하나님께서 내 자녀라고 부르실 것을 예언했다
저번 시간에 이어서 이번 시간에도 계속 로마서 9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을 공부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계속 순환되고 있는 과정 중에서 하나님께서 더 이상 용납하실 수가 없는 결정을 하시는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에게 왜 하나님이 열한 번째 재앙이나 열두 번째 재앙은 안 내리셨을까? 바로를 홍해 속에서 건져내서 왜 회개할 기회를 안 주셨을까? 그런 질문은 인간적인 상상이며 성립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우리도 과거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점점 소홀히 하고 마음이 강퍅해지는 경우가 올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수없는 기회와 은혜의 시간을 주시지만 어느 순간에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더 이상 용납하시지 않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 25절에서 선지자 호세아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우리가 알고 있듯이, 호세아는 정말 품행이 단정치 못한 창녀와 결혼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아이 둘을 낳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쓰라릴 대로 쓰라린 가정사를 통해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언약을 맺는 방법을 깨닫고 유대인들이 얼마나 배은망덕한 길로 나아갔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버린 유대인들을 다시 하나님께서 내 자녀라고 부르실 것을 예언했다고 바울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이사야 1장 9절)을 인용하여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이라 할지라도 그 중에서 남은 자가 구원받겠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로마서 9장 27절)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다 그만두고 의인의 씨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에게 우리 자신을 맡기는 믿음으로 그 의를 받는 남은 자손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 ‘씨(seed)’라는 말은 성경에서 대단히 중요한 표현입니다. 요즘 용어로 옮기면, 유전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전자, 즉 그분의 DNA가 우리 안에 심어지는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한 국면입니다. 우리 안에 사랑의 종자가 심어지는 것입니다. 이 종자는 분명히 죄인을 용서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본성, 죄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본성, 이렇게 두 개의 본성이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9장 30〜33절 가운데서 아이러니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의에 이르지 아니한 이스라엘은 행위를 의지했다고 나옵니다. 자기 자신이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행위에 의지했던 이스라엘과 율법을 이루지 못한 이방인들은 둘 다 똑같은 사람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이루어놓으신 율법의 의에 자기를 전적으로 내어 맡겼던 이방인들은 의에 이르렀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죄된 자아와 본성을 용서하시는 십자가의 피에 던지고 그분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새롭게 창조하시는 본성을 받고 또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그 일을 이루시도록 하는 일에 우리에게 주신 새 본성을 끊임없이 그분에게 내어 맡기는 믿음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로마서 9장 25절
- 이사야 1장 9절
- 로마서 9장 27절
- 로마서 9장 30〜3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