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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의의 옷을 아들에게 입히시는 것
이번 시간에도 저번에 이어서 언약의 내용을 더 살펴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우리를 업어주시고 씻겨주신다면 세 번째로는 우리를 새 옷으로 입혀주십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에스겔 36장 26절) 하나님께서 새 영과 새 마음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새 영과 새 마음’을 일반적으로 같은 말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지만 히브리어로는 다른 단어입니다. 히브리어로 ‘영’은 ‘루아흐’, 즉 ‘숨’입니다. 반면 ‘마음’은 ‘레바브(לְבַב)’, 즉 ‘심장’입니다. 비유하자면, 영이 땅이라면 마음은 그 땅에서 올라오는 식물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숨이 들어가면 심장이 뜁니다. 그래서 영과 마음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이 없이는 심장이 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업어주시고 씻겨주신 다음, 우리에게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너희 마음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겠다.”고 말씀합니다. 가만히 보면, 영과 마음은 둘 다 새로 주시겠다고 하시고서는, 마음은 ‘굳은 마음’만 제거하시지 ‘굳은 영’은 제거하시겠다는 말씀이 안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죄의 본성은 제거하신다는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 짚고 넘어갈 사실은 새 본성이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옛 본성은 그대로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새로운 영으로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사단이 옛 본성을 자극해서 죄를 짓게 만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거듭났는데, 왜 옛 본성이 나와서 이토록 나를 괴롭힐까?” “내가 거듭나지 않은 걸까?” 이렇게 물어보시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거듭남은 우리의 본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로마서 7장 6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17절)고 난감해 합니다. “내가 거듭난 뒤에 죄가 너무 싫어서 안 지으려고 발버둥 쳐도 죄가 여전히 나를 잡아다가 죄를 짓게 한다.”는 것입니다. 거듭남과 상관없이 사도 바울조차 죄의 본성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과거에 죄에 익숙해 있는 그를 잡아다가 죄를 짓게 합니다.
그래서 죄를 안 지으려고 발버둥 치고 자지러지면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울부짖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장 24절) 하지만 바울은 바로 이어서 내 안에 새 마음에 생겼다는 사실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대단한 역설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25절) 그리고는 바울은 절망 속에서 즉시 거듭남과 구원의 관계를 깨달아 버립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 8장 1〜2절)
하나님께서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탕자가 집에 왔을 때 아버지는 돼지우리를 뒹굴었던 아들을 깨끗하게 목욕시켰습니다. 그리고 끝냈는가? 아닙니다. 아버지가 그 탕자를 깨끗하게 목욕시킨 다음에 자신이 가진 가장 비싸고 좋은 옷을 입히십니다. 죄를 씻으시고 그 다음 아버지가 의의 옷을 아들에게 입히시는 것입니다. 새 영과 새 마음이 온 것, 이것이 의의 옷을 입은 상태, 의롭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마르틴 루터는 이 과정을 깨닫고 빌라도의 계단을 박차고 일어난 것입니다.
성경구절
- 에스겔 36장 26절
- 로마서 7장 6절
- 로마서 7장 17절
- 로마서 7장 24~25절
- 로마서 8장 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