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거듭남은 본성과 품성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by blogmaster posted Sep 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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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과 본성, 즉 품성을 닮았다

구원 받은 상태, 곧 거듭난 상태를 성경적으로 정확히 이해하려면 타락 전의 본성과 타락 후의 본성을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거듭남은 성령께서 타락 전의 본성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조 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창세기 1장 26절)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종자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은 단순히 외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마음과 본성, 즉 품성을 닮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그것이 무엇일까요? 전도서 3장 19절을 보면, 사람과 동물이 동일한 호흡과 생기로 지어졌다고 말합니다.

인간 동물
창조자: 하나님 창조자: 하나님
재료: 흙 + 생기 재료: 흙 + 생기
하나님의 형상: 있음 하나님의 형상: 없음

동물에게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없습니다. 동물도 지성이 있고 아이큐가 있습니다. 감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이 없습니다. 동물에게는 없고 인간만 가진 고유한 형상은 아래와 같습니다.

신앙 본능: 시편 42편 1절; 갈라디아서 5장 6절

하나님께서 인간 자녀에게 베푸시는 본능적 사랑에 대한 본능적 반응이 바로 신앙 본능입니다. 신앙이라는 말의 본래 뜻은 ‘맡긴다’라는 뜻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6절의 말씀을 보면,

맡기는 일, 곧 ‘믿음’은 사랑이 역사할 때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휘발유가 자동차 속에 들어가면 자동차가 움직이듯이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면 사람이 하나님께 본능적으로 맡기게 됩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편 42편 1절)

사랑의 법: 로마서 2장 14〜15절

본능적 사랑의 율법이 인간의 유전자에 기록되어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당신의 법을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여기 ‘행위’라는 말이 헬라어로 ‘에르곤(ἔργον)’인데, 이 말은 ‘열매’라고 읽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양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십계명이 없어도 무엇이 나쁜 행동인지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율법을 마음에 기록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본질이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22장 37〜40절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태초에 아담이 창조될 때에 아담 마음속에 십계명을 주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본능,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본능, 즉 양심이 새겨진 것입니다. 죄가 들어온 다음에 도둑질도 생기고 거짓말도 생긴 것이지 전에는 도둑질과 거짓말이 뭔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아담의 마음에는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 이전에 남의 것을 가지지 않는 양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절대 자유의지: 요한계시록 3장 20절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절대적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오로지 인간에게만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자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사람의 마음문은 문고리가 안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밖에서는 아무도 못 들어갑니다. 오로지 본인이 열어주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절대적인 자유입니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아버지의 사랑의 가슴에 콘센트를 꽂을 수도 있고 안 꽂을 수도 있습니다. 꽂으면, 사랑이라는 전기가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전기를 받으면 사랑이라는 제품이 계속해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자기 마음껏 나누고 사는 자유로운 존재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본능적으로 사랑만 할 줄 알았던 인간이 타락 후에는 자신만을 사랑하는 죄를 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서 5장 12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절대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다시 하나님의 사랑에 콘센트를 꽂으면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놓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