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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식으로 기도하고 계신다
유대의 위대한 왕, 다윗은 마음에 품었던 여자 하나를 얻기 위해 교묘하게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주도면밀한 범행을 계획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선지자 나단을 통해 자신의 죄가 낱낱이 까발려지고 자신이 저지른 추악한 죄를 직면하면서 회개의 마음으로 시편 51편을 지어 부릅니다. 욕정에 눈이 어두워 밧세바를 범하고 통회하는 눈물을 흘리며 다윗은 주님께 매달립니다.
시편 51편 17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여기 흥미로운 단어가 나오는데, 11절에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기도한 다음, 17절에 오면 주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영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에 쓰인 ‘영’이라는 단어가 바로 일전에 우리가 공부했던 ‘루아흐’입니다. 원문에는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에서 ‘구하시는’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히브리어로는 간단하게 ‘하나님의 제사’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문장을 정리하면 “하나님의 제사는 상한 영이라.” 정도가 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다윗 자신이 스스로를 가리킨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이해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제사가 성령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두 번째 해석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인간이 범죄했을 때, 성령은 그 누구보다, 심지어 죄인 자신보다 더 찢어지고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잘못됐을 때 부모의 가슴은 찢어지기 마련입니다. 철없는 자식은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뒤에서 그 죄를 다 해결해야 하는 부모는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처음에 이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가 다윗의 상한 심령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아,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 마음이 상하라고 요구하시는구나.’ 그러던 어느 날, 이 말씀을 다시 보는 순간 ‘아, 다윗보다 더 아팠던 가슴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가슴이었고, 다윗보다 더 상했던 심령은 성령님의 가슴이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실제로 죄를 앞에 놓고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탄원을 올렸던 사람은 죄의 당사자인 인간이 아니라 예수님이셨습니다. 정작 밤을 지새우며 죄를 도말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할 사람들은 드러누워 쿨쿨 자고 있었습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편 51편 17절) 이 말씀에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은 다윗 자신이 아닌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못난 자식 때문에 속이 문드러진 예수님께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고 일으키신다는 귀한 약속입니다. 시편 51편은 범죄한 다윗의 회개하는 마음에 앞서 예수 그리스도의 찢어지는 가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찢어지는 가슴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성령의 가슴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로마서 8장 26절)한다고 말합니다. 정말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다윗을 위하여 기도하셨던 영, 하나님께서 차마 멸시하지 못하신 것은 다윗의 상한 마음 이전에 다윗을 위하여 간절히 통회하며 우셨던 성령의 찢어지는 가슴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속에서 드렸던 그 간구는 성령의 간구였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통회하게 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기도를 받아 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기도하는 게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 모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회개 역시 당사자가 하는 거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회개도 성령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녀들을 바라보시는 아픈 가슴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전달되고 그것을 우리가 느낄 때에 회개의 기도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드렸던 참회의 기도가 그렇게 나왔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기도를 한 것이 아닙니다. 엄밀히 말해서, 성령의 기도를 했고 겟세마네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한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회개했기 때문에 반대로 하나님께서 용서라는 선물을 내놓아야 한다고 착각합니다. 이런 관계는 은혜가 아니라 거래이며 비즈니스일 뿐입니다. 회개마저 그분의 것입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을 사람이 있겠느냐?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가느니라.”(로마서 11장 35〜36절)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만유의 주재이고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용서의 사랑을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받고 경험하도록 하십니다. 여러분 모두 이 아름다운 주의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 회개의 기도가 터져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키워드:
성경구절
- 시편 51편 11절
- 시편 51편 17절
- 로마서 8장 26절
- 로마서 11장 35〜3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