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반석 위에 지은 집

by blogmaster posted Jan 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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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이제 우리가 산상수훈의 마지막 말씀으로 가 본다. 마태복음 7장 22, 23절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장 슬픈 선고의 이야기이다. 문제는 이 분들이 하나님의 사업을 했다고 하는 것이다. 선지자 노릇을 했다. 목사님 노릇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냈고 병자도 고쳤고, 많은 일을 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분명히 확인해야 될 것은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한 일이 우리의 구원과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 모든 것들이 공로가 되어서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보탬이 될 줄로 생각한다. 소위 은혜 더하기 인간의 헌신, 이런 공식은 없다. 분명히 성경의 공식은 에베소서 2장 8절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한다. 

우리가 믿음에 대해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주제에서 많이 들었기 때문에 더 자세히 반복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날에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했고 무엇을 했는데 왜 나를 구원해주지 않습니까? 그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라고 했다. 이 ‘안다’는 히브리말은 우리가 오랫동안 공부한대로 ‘사랑으로 하나 되어 안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왜 그런가?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말하면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유정란과 무정란의 비유와 같다고 생각한다. 유정란 속에는 병아리가 들어있다. 그러나 무정란 속에는 병아리가 없다. 다시 말하면  똑같은 달걀인데 하나는 곯아서 없어질 달걀이고 하나는 병아리가 될 수 있는 달걀이다. 내가너희와 사랑으로 하나 되지 않고도 너희가 얼마든지 나를 위해서 일할 수 있고 설교도 할 수 있고 전도도 할 수 있고 헌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7장 15절 이후에 하신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하신 말씀가운데서 이 말씀이 결론적으로 나타난 주목해야 할 말씀이다. 문제는 거짓선지자이다. 그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마태복음 7장 16절“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 것이다” ; 16, 17절“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 것이다” 열매이다. 예수님께서 열매를 말씀하셨는데 열매가 무엇인가? 23절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불법, 법이 아닌 것이다.

다시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성경 전체에 나타난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이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 사이에 말씀한 이 예수님의 설명,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주님의 해석을 따라서 하지 아니 했을 때에는 율법을 범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긴 시간 이야기했지만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을 돌려댈 만큼 사랑이 있는가? 억지로 오리를 가게하면 십리를 따라가 줄만큼의 그 영혼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있는가?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안주고는 못 견디는 본능적인 동정심이 있는가?

빌려준 사람에게 다시 달라하지 못할 만큼(눅 6:30) 그를 사랑하고 그의 행복을 위해서 기도하고 바라는 아름다운 사랑이 우리 속에 있는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지 않고, 품을 수 없고 오히려 그 술집 여자를 정말로 사랑하고 불쌍히 여길 수 있는 사랑이 우리 속에 있는가? 거짓말을 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하는가?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사랑에는 거짓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마음을 다 주는 것이 사랑인데 한쪽 편을 남겨두고 주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부터 6장, 7장 전체를 거쳐서 하신 모든 계명, 모든 율법이 아닌 불법을 행하면서도 주님을 위해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이름이 힘이 있으니까 온갖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너는 내 종자가 아니다. 너 누구냐? 마태복음 24장 35절에서 예수님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내 말’이 무엇인가? 그분의 삶이다. 십자가에서 찢겨지신 몸이다. 우리가 이미 공부했듯이 요한복음 5장 61절 “내가 너희에게 줄 생명은 세상을 위한 내 살이라”고 찢겨진 내 살이 생명이라고 그것이 내 말이라고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우리가 다시 복습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그 생명의 말씀은 바로 주님의 살을 찢어서 피를 쏟아서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과 용서의 말씀이다. 그것을 먹고 마셨을 때, 그 사랑과 용서를 마셨을 때는 우리의 살이 예수의 살이 되고 우리의 피가 예수의 피가 되어서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있다. 그렇게 안 산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안 되어진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반석이 바로 예수님

예수님께서 내 말을 듣고 내 말대로 사는 사람은 반석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다고 말씀하신다. 그 반석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고린도전서 3장 11절“이 닦아둔 터 이외에는 능히 다른 터를 닦아둘 자가 없으니 이는 곧 예수그리스도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할 수 없나니 천하에 인간의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이름이 없으니라” 너무나 분명한 말씀이 아닌가? 사도행전 4장 12절 바로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서지 않으면, 그의 말씀위에 서지 아니하면, 그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면, 그 말씀대로 집을 짓지 아니하면 그 집은 다 무너지게 되어있다. 

내가 오늘 하고 있는 신앙이, 내 삶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지어지고 만들어진 삶인가? 아니라면 모래위에 집을 짓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건축자는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아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서 벽돌을 쌓고 철근을 놓고 시멘트를 붓고 내가 짓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나님께서 그 집을 지으신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그분의 용서와 사랑으로 내 신앙의 집을 지어가시고 완성시키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2장 5절에는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위지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내가 짓는 것이 아니다, 세워지는 것이다. 건축이 되어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오늘 스스로 만든 집에 만족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살았다고 한다.

미국의 가수이자 배우가 부른 유명한 노래가 있다. ‘나는 내 인생을 잘 살았다’(‘I did my way’)하는 노래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내가 잘살았다.” 여전히 주어가 자신이다. ‘내가 잘 살았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었다’ 조금 더 발전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이 내 인생을 잘 살아주셔서 내 꿈을 다 이루어주셨다. 내가 원하는 것 다 해주셨다.” 얼마나 멋진가! 예수님께 다 맡겨서 내가 원하는 꿈, 내가 드렸던 모든 기도가 다 응답되었다.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신가 라고 말하는 분도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내 속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셨다고, 당신의 삶을 사셨다고, 당신의 사랑을 이루셨다고.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요, 삶의 내용도 내 삶이 아니라는 사실을 요한계시록 14장 12절에는 “성도는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라” 예수님께서 사셨던 그 믿음의 삶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드려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자신의 몸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그토록 소원하셨던 아버지의 뜻을 위해서 자기 자신은 제물로 바치셨던 삶이다.

여러분, 우리 주님의 믿음이, 우리 주님의 삶이 우리의 삶이 되도록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기지 않겠는가! 우리 주님의 뜻이 우리 아버지의 뜻만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간절히 축원하면서 말씀을 줄인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7장 22절로 23절
  • 에베소서 2장 8절
  • 누가복음 6장 30절
  • 마태복음 17장 15절
  • 마태복음 7장 16절로 17절
  • 마태복음 5장부터 7장
  • 마태복음 24장 35절
  • 요한복음 5장 61절
  • 요한복음 6장 63절
  • 고린도전서 3장 11절
  • 사도행전 4장 12절
  • 베드로전서 2장 5절
  • 요한계시록 14장 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