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기도 응답의 첫 번째 조건

by blogmaster posted Jan 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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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언부언의 의미

계속해서 마태복음 6장 7, 8절 말씀을 보도록 하자.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여기 예수님이 하신 중언부언의 의미가 무엇인가? 우리말은 말을 반복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거듭 ‘중’(重)자, 중언부언(重言復言),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기도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왜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을까? 우리가 말을 할 때에 어떤 말은 반복해서 하는 말이 있다. 너무나 간절하거나 혹은 정말 못 알아 들으셨을지 모르기 때문에 한 번 더 말씀드리는 말씀이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방인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말은 기도를 두 번 세 번 반복하지 말라는 말은 사실은 아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기도할 때에 반복하는 기도를 가끔 한다. 그냥 간단하게 용건만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설명도 한다.

예수님이 과연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했다는 생각이다. ‘내가’라는 단어, 사단이 우리에게 가르쳐 온 종교는 ‘자력종교’이다. 내가 무언가를 해야 된다고 하는, 그래야 하나님이 들이신다는 소위 우리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을 쓴다. 인간이 모든 것을 정말로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또 혹은 여러 가지 표현이 있다.

지성(至性)이면 감천(感天)이라든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든지 이런 식의 사상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무언가를 해서, 노력을 해서 어떤 결과를 얻기를 원하는 사상이다. 이 말씀을 언젠가 한번 드린바 있다. 지성을 누가 지성을, 다 하는가하면 사람이 지성을 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지성을 다하고 있는 존재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육신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온갖 정성을 다 해야 겨우 그저 아이가 반응을 한다.

하나님 아버지의 지성이 다 해 졌을 때에 감천이 아니고 하늘(‘천’자 ‘天’)이 아니고 사람 ‘인(人)’, ‘감’이다. 인간이 겨우 감동을 받을까 말까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 바리새인들이나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 제사장들이 계속해서 말을 반복해서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뭐 어쩌고, 어쩌고 계속 그냥 그 말을 반복해서 계속 머리를 조아리고 그렇게 해서 오랫동안 기도한 것, 내가 기도를 바친 정성을 받으시고 그 다음에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이런 뜻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혀 아니다, 전혀 반대이다.

이 성경에 우리 하나님께서 수도 없이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를 용서했다, 내 용서를 받아 주라, 너를 위해 내가 죽었다, 수도 없이 많은 말씀을 하셔서 겨우 마음 가운데 조금 감동이 되는 것이다. 지성을, 정성을 다하신 그 분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이시지 우리가 아니다. 우리가 구원을 지성을 다해서 살수 있다면 그것 조금 하고서 달라고 할 만한 그것이 아니다. 주시는 은혜는 너무나 값이 크고 무한한 것이다. 그것을 그저 일주일 금식기도 했다고 그 금식기도 대가로 너한테 준다. 그것은 너무나 싼 것이다.

로마서 11장 35절 36절의 말씀대로 “누가 먼저 주께 드려서 갚으심을 받을 사람이 있겠느냐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가느니라” 저와 여러분들이 무슨 노력을 해서 무슨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거래의 어떤 법칙으로 보아도 너무나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 거래가 성립 될 수 없는 것이다.

백 원 어치 물건을 달라하면 백 원어치 밖에 안 준다. 천 원어치 달라하면 천 원어치 준다. 우리가 드린 정성이 여러분 도대체 값이 얼마나 되겠는가? 값이 얼마 되지 않는다. 너무나 싼 것이다. 그런데 주신 은혜는 너무 크다. 그래서 내가 바친 정성에 의해서 주신다고 하면 지극히 작은 것 밖에는 받을 것이 없다.

사단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온 것

사단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온 이 이야기는 이렇게 지성을 다해서 감천을 한 다음에, 하늘을 감동시켜서 이 결과로 복을 달라는 것이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자기 사랑의 표현인 복을 달라는 것이다. 내가 잘 먹고 편안하고 건강하게 살게 해 달라는 것이다. 결과는 무엇인가? 이기심이다. 죄이다. 자기사랑이라는 죄이다.

오랫동안 마귀는 우리에게 이런 교육을 시켜왔다. 그래서 3일 금식 기도 가지고는 안 되고 일주일 금식기도를 해야 된다. 일주일 가지고도 안 된다. 열흘은 해야 된다. 열흘 가지고도 안 된다. 40일을 해야 된다.

인간의 작은 정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사겠다는 그런 어리석은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이방인들은 생각하기를 자신들이 그렇게 기도를 많이 하면 그 기도를 통해서 자신들의 죄가 용서되는, 죄를 속죄하는 그런 공로가 있다고 그렇게 믿어 왔다.

우리가 다 잘 아는 대로 엘리야 당시에 바알과 아스다롯 우상들을 섬기던 이방 사람들에게 엘리야가 좋다, 그러면 우리 함께 내기를 하자. 진짜 하나님이 누구인지라고 제안하자 동의했다. 그래서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것으로 내기를 하자고 말하고 있다.

결론은 이 엘리야는 단 한 번의 기도로 하나님께서 불을 내리시지만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이 바알 선지자들은 하루 종일, 아침 제사 드릴 때부터 저녁 제사 드릴 무렵까지 거의 6시간 동안 소리를 지르고 뛰놀다가 안 되니까 나중에는 칼을 가지고 자기 몸의 피를 흘리고 자해를 한다. 그렇게 하면 자기들의 귀신인 마귀가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별짓을 다 한 것을 우리 성경기록에서 보게 된다.

열왕기상 18장 26절 끝 부분에 보면 “저희가 그 쌓은 단 주위에서 뛰 놀더라” ‘뛰논다’는 말은 우리말은 그냥 뛰 논다지만 이 히브리말은 아주 발광을 하는 모습이다. 소리를 지르고 바알이여 불을 내리소서, 바알이여 불을 내리소서! 그 때에 그들이 열왕기상 18장 28절에 보면 “이에 저희가 큰 소리로 부르고 그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더라” 칼을 가지고, 창을 가지고 자기 몸을 쑤시고 피가 줄줄 흐르는데도 계속 뛰고 바알이여 불을 내리소서!라고 부르짖는다.

불이 안 내려온다. 사단이 그렇게 사람을 기만하고 속인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이방인들처럼 중언부언하지 말라, 심지어는 안 되니까 마지막에는 사람들이 자기 몸을 칼로 상해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나중에는 목이 다 가서 그냥 목 쉰 소리로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본다. 죄송하지만,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그렇게 귀가 어두운 분이 아니시다, 다 듣고 계신다. 특별히 오늘 이 시간에 우리에게 주신 말씀대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사정을 이미 다 알고 계시고,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고 명백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마태복음 6장 8절“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아버지가 자식이 필요한 것, 무엇을 모르시겠는가? 다 알고 계신다. 그런데 여기서 주님께서 분명히 너희 아버지께서 이미 아신다고 표현하신 이 아신다는 말을 하신다. 사단이 모르시는 하나님으로, 무엇을 모르시는 아버지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알려드리려고 소리를 지르고 반복하고 그 다음에 기도를 중언부언해서 길게 해야지 그만큼 공을 드렸으니 내가 그렇게 정성을 다했으니까 그 만큼 그것을 공로로 받아주고 복을 주어야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하라! 기도는 죄를 해결하는, 실제로 죄를 해결하는 도구가 아니다. 기도, 그 자체는 아무런 효능이 없다.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무리 유창한 기도를 드렸을지라도 그것은 무익한 말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 무엇인가? 마음이다.

잠언에 여러 번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내게 달라”, 말이 아니다. 그 말 속에 담긴 진정, 진실, 마음이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받으시는 것이, 보시는 것이 이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마음 없이, 진정한 마음 없이 달라고 기도한다. 사실은 주셔도 그만이고, 안 주셔도 그만이다. 그러나 참으로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말 한마디 속에 그의 진정이 다 들어 있다. 길게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

예수님이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누가복음 11장은 기도의 헌장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장이다. 그런데 누가복음 11장에서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 하시는 말씀이 무엇이냐. 첫 째로 2절부터 4절까지 보면 기도를 어떻게 하라는 내용을 가르치고 계신다. 그 다음에 5절부터 8절까지 보면 기도하는 사람에 태도를 말씀하셨다.

그 태도가 무엇인가? ‘강청함’이다. 자기 집에 떡이 없다. 그 옆집 친구에게 가서 밤에 자기 집에 손님이 왔는데 떡을 한 덩이 빌려 달라고, 그런데 한 밤중에 1시가 넘었는데 자고 있는 친구를 깨워서 염치를 불구하고 제발 한 덩어리만 빌려주라! 그 때 그 친구가 떡을 주면서 하는 말이, 네가 내 친구이기 때문에 주는 것이 아니라 너의 강청함을 인해서 내가 주었다. 그것을 예수님이 기도를 응답 받는 조건이라고 말씀하신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6장 7절로 8절
  • 로마서 11장 35절로 36절
  • 열왕기상 18장 26절
  • 열왕기상 18장 28절
  • 누가복음 11장 2절로 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