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속옷까지도 주어라

by blogmaster posted Jan 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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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이기라

마태복음 5장 39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악을 대적하면 그 자체가 악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대적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하신다. 이기는 방법은 선이다. 선은 다 주는 사랑을 말한다. 사랑으로 이기라고 하신 표현이다. 

하나님 아버지가 그와 함께 계셨다. 요한복음 14장 17절에 그분 안에 계셨고 그분과 함께 계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두르고 있던 하나님 아버지의 임재하심이, 무한한 사랑이 세상의 축복을 위하여 허락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그분에게 닥치지 아니하였다. 그에게 위로의 근원이 있었으며 이것은 또한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감동된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된다. 

로마서 8장 9절 이 그리스도인을 겨냥한 강타는 그를 당신의 임재로 두르고 계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주님께서 돌아가시면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장 33절에 말씀하신다. 그래서 우리를 치는 침은 예수 그리스도를 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과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된다. 

예수님을 핍박하던 사도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주님께서 하셨던 말씀과 같은 말씀이다. 사도행전 9장 4절“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하신 말씀이다. 성도들을 박해하고 죽이던 그 모든 것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죽이는 행위였다. 우리의 삶에 닥치는 어떤 것도 예수님을 통과하지 않고 오는 것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대신해서 그 악을 대적할 필요도 의무도 없다. 그것은 곧 주님을 대적하고 핍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대적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자신도 폭도들에 의해서 그 수많은 고난을 당하셨지만 결단코 대항하시지 않았다고 말씀했다. 그래서 주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모든 것이 다 합하여서 선을 이루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무엇이든지 다른 사람에게서 강탈을 당하고 송사를 당하고 고발을 당해서 억울하게 뺏길지라도 결코 그것을 대적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모든 소유는 예수님의 피의 값으로 사신바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것이 아니다. 이 피 값을 치루고 산 예수님의 소유물이다. 우리의 것이 없다. 

겉옷까지도 내주라

누가 너를 고발해서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도 내주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속옷도 겉옷도 다 내 것이고 네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너희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우리 주인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너를 억지로 짐을 지워서 오리를 가게 하면 십리까지 가주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이 우리의 주인 되신 우리 주님의 부탁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다. 그는 오리가 아니라 십리가 아니라 말할 수 없이 먼 거리, 하늘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셨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러므로 그의 삶과 죽으심 자체가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한 그분의 사랑의 표현이었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의 사랑의 값, 피의 값으로 산바 된 예수님의 소유가 되었을 때는 그분이 우리의 주인으로서,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서 그분이 그렇게 하라는 대로 반드시 해 드려야 될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돌아가신 우리 장모님의 사랑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자원하는 사랑으로 어쩌다가 나의 아내와 같이 처갓집을 가게 되면 우리 장모님이 반찬 김치 깍뚜기 된장 간장 고추장 할 것 없이 모든 음식을 다 준비해서 우리에게 싸주시고 그리고는 집 앞에서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를 드리면 우리 장모님은 대답하는 대신에 지나가는 택시를 잡고 택시 운전석 옆에 앉으신다. 옛날에 운전석 옆에는 차비를 내는 사람이 주로 거기에 앉는다. 

우리는 뒤에 타서 짐을 안고 있으면 얼마 후에 장모님이 돈을 내시고 터미널에 내린다. 그리고 이제 그만 들어가시라고 인사를 드리면 대답이 없이 이번에는 표를 세 장을 사 오신다. 그리고 그 무거운 단지들을 두 손에 들고 차에 오르신다. 우리 집이 있는 곳까지 두 시간 동안 버스를 함께 타고 오신다. 이제 그만 집에 가시라고 인사를 드리면 또 다시 말없이 밖에 나가셔서 택시를 잡아서 다시 그 반찬들을 차에 실으시고 그리고 우리 집 앞에까지 오셔서 집 앞에 내린 다음 그 물건을 들고 부엌에 와서 제 자리에 두시고 그리고 돌아가시는 것이다.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해서 오리 십리 백리를 가시는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어머니의 본능적 사랑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든 사랑이다. 그 본능적 사랑의 아버지가 어떤 것도 막을 수 없고 방해할 수 없게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셨다. 그것이 십자가에 나타나셨던 예수님의 사랑이다. 

분명히 이사야 9장 6절에 우리에게 한 아기가 주어졌는데 그 이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이사야가 노래하고 있다. 아버지가 자식 대신 죽으러 오지 않으면, 자식의 짐을 대신 지지 않으시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옷 아니라 속옷 그 어떤 것도 다 주시고 가셨다. 발가벗기운 채로 가셨다. 겉옷도 속옷도 다 주시고 마지막에는 피와 물을 쏟아 주시고 생명을 다 쏟아주시고 그야말로 걸레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가신 것이다. 

 

그 사랑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가 그 사랑을 맛보고 먹고 마셨을 때에는 우리도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아버지의 자식으로 변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마태복음 5장에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나타난 이 사랑의 원칙들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 것인지 이것은 불가능하다고 사람들이 흔히 말한다.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그 사랑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그 사랑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셨을 때, 주님의 그 사랑과 용서를 먹고 마셨을 때는 우리도 그렇게 살아지는 것이다. 

우리의 세포가 바뀌고 우리의 피가 바뀌고 우리의 유전자가 바뀌어서 우리도 그렇게 살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5장 48절에 너희 아버지의 완전하심처럼 너희도 완전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완전’이란 개념은 ‘사랑의 완전’인 것이다. 너희 하늘 아버지의 완전하심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는 말씀을 누가복음 6장 36절에는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고 말씀하신다. 

이 완전의 개념은 편애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모르는 자에게까지 똑같이 사랑하신다는, 자비를 베푸신다는 사랑의 완전이다. 이 사랑의 완전이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는 완전인데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히브리서 10장 14절에 그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완전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15절에 말씀하신대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기록하셨을 때에 그것은 넉넉히 가능한 일이 된다고 말한다. 

곧 우리 마음의 법이, 우리 유전자의 법칙이 이웃에 대한 본능적인 사랑의 법칙으로, 유전자로 바뀌면 우리는 넉넉히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리 중에 거듭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삶을 살았다.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보이신 것이다. 그렇게 산 사람들이 우리 눈에 가끔 보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히 이루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사셨던 삶이 그러한 삶이다. 로마서 8장 9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의 정신,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이름은 그리스도인이지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자기희생의 사랑, 본능적 사랑의 유전자로 다시 거듭나지 않으면 결단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분명히 하라고 말씀하실 때는 그렇게 만들어 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을 우리는 거듭거듭 강조하고 기억해야 된다. 우리 주님을 십자가로 보내고 우리 주님의 가슴을 갈랐던 것은 바로 우리의 지독한 이기심의 죄였다. 

자신 밖에 모르는 철두철미한 자기 사랑의 죄가 우리 주님의 가슴을 그렇게 아프게 갈랐고 돌아가시게 한 것이다. 그 용서의 사랑을 깨닫고 경험하고 그 사랑에 자신들을, 우리의 이기심 전체를 통째로 드려서 용서받은 사람들은 이런 상태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주님의 약속이다. 이 약속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이루어지기를 다시 한 번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란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5장 39절
  • 요한복음 14장 17절
  • 로마서 8장 9절
  • 요한복음 16장 33절
  • 사도행전 9장 4절
  • 이사야 9장 6절
  • 마태복음 5장 48절
  • 누가복음 6장 36절
  • 로마서 8장 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