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오른 뺨을 치거든

by blogmaster posted Jan 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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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마태복음 5장 38, 39절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여기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그 다음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앞에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하신 주님께서 뒤에 가면 딴소리를 하신다. 우리가 우선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말씀이 성경에서 어떻게 어디에 사용되었는지를 잠시 살펴보자. 

구약에 세 번 사용되었는데 출애굽기 21장 24절 이 말씀은 재판을 하는 재판관이 공정하게 재판해야 한다는 말씀가운데 나타난다. 동시에 레위기 24장 20절도 같은 말씀이다. 마지막으로 신명기서 19장 21절에도 같은 말씀이 나온다. 신명기서는 특별히 아주 구체적으로 재판에 관련되어 이 말씀을 한다. 19장 21절에도 다 재판과 관련된 단어로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는 원래의 정황으로 돌아가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말씀의 앞뒤 문맥을 보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씀은 소위 채무자가, 내가 빚을 졌는데 갚을 때는 반드시 그 본래의 없어진 것을 그대로 100% 갚아야 된다. 채권자에게 채무자로서의 의무를 말씀하신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돈을 천만 원을 빌렸는데 형편이 어려워서 그냥 칠백만 원만 갚고 나머지는 탕감해 주세요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을 팔아서라도 그 사람에게 빌렸던  원금을 다 돌려주어야 된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이방인들과의 거래에 있어서는 이자를 받으라고 표현하셨는데 자기 같은 민족 이스라엘 동족끼리는 절대로 이자를 받지 못하게 했다. 이자를 받는 습관은 좋지 않다. 돈을 돈으로 보는 것이고 돈을 사랑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돈을 빌려줄 때 이자 받지 않는다. 어떤 부모들은 교육상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받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에게 준 빚은 빚이 아니고 사랑이다. 그래서 나중에 못 갚으면 자식에게 없는 것으로 해준다. 이 빚이라는 게, 돈이라는 게 사랑으로 변한다. 

그런데 여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이제 본인이 반대가 되어 내가 채권자가 되었을 때, 내가 돈을 돌려 받아야 된다. 왜? 그 사람이 내 오른편 뺨을 때렸다는 것은 오른편 뺨을 내가 그 사람에게 한 대 빌려 준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받아야 된다. 그 사람의 오른편 뺨을 한 대 때려야 돈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채권자 입장에서 채무자에게 돈을 받아내야 될 입장에서는 반드시 받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예를 들어서 천만 원을 빌려줬는데 그분이 갚을 능력이 없다면 다시 여기에다가 천만 원을 더 주라. 오른편 뺨을 내가 때려야 되는데 때리기는 그만 두고 그 사람이 나에게 왼편 뺨까지 때릴 수 있도록 뺨을 맡기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당신의 그 마음에 쌓인 분노와 섭섭함을 다 풀어라.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분노가 사라질 때까지 내 오른편 왼편 대줄테니 때려라. 문제는 당신 마음에 있는 불편함이 사라지는 게 중요하고 당신이 행복해지는 것을 원한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렇게 못한다. 

지금 있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하나님의 사랑의 유일한 흔적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러한 본능적 사랑의 관계에서만 이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로 이야기한다. 남의 것은 갚지 않고 받아야 될 것은 꼭 받아 내겠다. 그래서 심지어는 재판을 걸어서 법정에 소송을 내고 기어코 그것을 받아내려고 한다. 

그러한 법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혹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남에게 갚아야 될 것이 있다면 법정에 가기 전에 먼저 가서 그 사람과 사화하고 돈을 다 갚아야 된다. 마태복음 5장 24, 25절에 보면 다 갚아야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26절의 말씀을 보면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여기에 예수님께서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를 헬라어 본문에 보면 ‘고드란트’라는 말인데 아주 작은 돈이다. 다시 말하면 일원짜리 하나라도 완전히 갚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네가 채무자가 되었을 때는 반드시 100% 갚아라,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이 나에게 빚을 빌려 줬을 때는 그 돈이 아까운 돈인데도 빌려줬다. 예를 들어 내가 천만 원을 빌렸는데 최선을 다해서 900만원까지밖에 못 갚았다, 죽을 때까지도 다 못 갚았다, 그런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용서하시리라고 믿지만 만일 돈이 있는데도 나머지 100만원을 안 갚고 자기 주머니에 가지고 있으면서 그냥 용서해주라고 그러면 하늘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형제의 마음과 양심을 위해서는, 그리고 형제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되기 때문에 마지막 100원짜리라도 정확하게 갚으라고 말씀하셨다. 때로는 어떤 경우에 우리들이 다른 사람의 빚을 탕감해 준다.

그냥 없는 걸로 하자. 하지만 그 생각은 잊혀지지 않는다. 계속 머리에 생각나는 것이다. 용서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상대방이 내 이를 다치게 했는데 어떻게 완전히 배상 할 수 없으니까 곧 똑 같이 만들어 줄 수 없으니까 이를 하나 빼겠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 한편 반드시 내가 손해를 끼친 경우에는, 완전히 갚아야 된다는 것이다. 이 갚는 일을 누가 하셨는가? 우리는 할 수가 없다. 채무자로서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본자에다 이자를 더해서 갚으셨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표현은 정말 율법의 공의, 완전한 공의, 율법은 절대적으로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된다는 것이다. 절대로 조금도 손해를 나게 해서는 안 된다. 100% 갚아야 된다. 

그런데 율법이 요구한 것 이상 몇 천만배로 갚으셨다. 그래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그 말씀을 실제로 이루어 주신 분은, 갚아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런 사랑을 받고 그런 용서를 받은 사람이 다른 형제들을 얼마든지, 내가 비록 뺨을 얻어맞았을지라도 그 사람이 나에게 빚을 졌을지라도 가서 그 사람이 사는 형편이 어려우니까 돈은 그만두고라도 쌀을 사주고 먹을 것을 사주고 와야 된다.

근본이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근본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는 전부 이 원칙을 나타내는 삶이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하늘의 집을 떠나신 다음에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빚을 갚아 주시기 위하여 원수들에게서 얼마나 많은 중상과 모략과 핍박을 당하셨는지,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그의 삶은 오른뺨 왼뺨을 얻어맞는 삶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인 자신의 몸을 찢어주시면서 끝까지 중상, 모략, 핍박을 견뎌내셨다. 중간에 포기하실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그는 우리 빚값으로 자기를 기쁨으로 십자가의 제물로 바치셨던 것이다. 

주님은 오직 우리에게 사랑과 용서와 위로만을 남겨주시고 가셨다. 이사야 50장 6절“나를 때린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나이다.” 계속해서 이사야 53장 7절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 하였으며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 아름다운 사랑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꼭 소유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5장 38절로 39절
  • 출애굽기 21장 24절
  • 레위기 24장 20절
  • 신명기 19장 21절
  • 마태복음 5장 24절로 26절
  • 이사야 50장 6절
  • 이사야 53장 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