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보는 방법
마태복음 5장 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내가 어렸을 때 이 말씀을 통해서 거듭남을 경험했다. 믿지 않는 내 친구들이 나에게 “네가 진짜로 하나님을 보았냐? 너 그렇게 예수님에게 미쳐있는데, 세상의 모든 것을 버렸는데 정말 예수를 보았냐? 하나님을 보았냐?”는 도전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아침과 저녁에 산에 가서 계속 하나님을, 예수님을 보여 달라고 기도했다.
그때 주님께서 주신 대답이 바로 이 마태복음 5장 8절 말씀이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여기 분명히 마태복음 5장 3절 말씀과 비교해 보면 팔복의 짝을 이루고 있는 복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이것이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여덟 가지 복이라고 표현하신 이 팔복의 첫 번째 말씀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여기에 보면 우리말은 ‘심령’이라고 번역했는데 지난 시간에 공부했듯이 여기 ‘영이 가난한 자는’ 5장 8절이 짝을 이루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영’과 ‘마음’은 분명히 다르다. 영은 본성이다. 인간의 속에 있는 본성이다. 마음은 본성에서 나오는 생각이다. 이것을 적절하게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마치 영은 땅과 같은 것이다. 그 땅에서 수많은 풀과 나무가 올라온다. 그래서 영과 마음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여기 주님께서 처음에 ‘영이가난한 자는’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근본 본성이 죄에 대해서 가난한 사람들, 욕심에 대해서 가난한 사람들, 교만과 이기심에 대해서 가난한 사람들 이것은 분명히 은혜라고 말씀드렸다. 인간은 본래 그렇지 않다, 그렇게 해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이다. 역시 마찬가지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이’ 여기 마음이라고 하는 이 말은 여기에서 우리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생각들을 말한다. “마음이 깨끗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한다. 곧 본성이 바뀐 사람들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 본성이 거듭난 사람들, 깨끗한 자는, ‘거듭난 자는 복이 있나니’ 이렇게 읽어도 틀리지 않는다.
하나님을 본 사람들
여기 놀라운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요.” 성경에 하나님을 본 사람들이 가끔 나온다. 대표적인 몇 사람을 보면 모세이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그는 자기 스스로 할 수 없었던 일을, 세상의 명예와 부귀영화를 버리게 된다. 갑자기 살인범이 되어서 그는 도망을 가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그 애굽의 화려했던 40년 인생과 전혀 반대되는 삶을 산다. 광야에서 목동이 된 것이다. 가장 천한 직업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평생을 사람이 아닌 양과 소들과 함께 산다.
외로운 인생 길 그것도 적지 않은 40년을 이제는 늙어서 죽을 때가 되었다.강건하면 80이요.(시90:10) 당시 수명이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이제 죽음의 문턱에 와있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얼굴로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는 은혜를 누린다. 내가 늘 말씀드리지만 죽은 사람은 부활해서 하나님의 얼굴을 다시 뵈올 수 있다. 세상을 향하여 살아있는 사람은 세상이 보이지만, 세상에 대하여 죽은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다.
모세가 어쩌면 자기 인생을 마감하는 시간이 되어서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비록 그가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한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자기 인생을 마감할 시간이 되었을 때, 그는 애굽에 대해서는 정말로 죽어버린 사람이 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지 않으셨다면 그는 그렇게 살다가 죽을 노인에 불과했다.
우리가 잘 아는 다니엘 역시 그렇다. 다니엘이 거의 90세가 되었다. 어렸을 때 포로로 잡혀 와서 일생을 바벨론에서 살았다. 더군다나 그는 환관이 되었다. 내시가 되었다. 그래서 사람 구실을 못하고 수염도 나지 않는 남자가 되었다. 인생의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남의 나라 포로가 되어서 그것도 요즘 젊은 친구들의 말대로 성 불구자가 되어서 수염 나지 않는 남자로, 목소리도 남자 목소리가 아니라 중성 목소리를 가진 내시로 평생을 살았다.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의 여정이었는지!
나라를 잃어버린 그는 날마다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기도하다가 드디어 90이 가까운 노인이 되었다. 사자 굴에 던져질 때도 그는 하나님을 향한 그의 믿음은 변치 않았다. 기도한다는, 기도의 죄목으로 그는 사자 굴에 던져졌다. 그 무렵 그의 인생의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그의 앞에 나타나신다. 다니엘 10장 3, 4절 그가 금식하고 기도하고 있을 때 그의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신다. 그가 더 이상 주님을 뵈올 수 없었기에 그 죄 많은 자신의 본성의 죄를 그는 너무도 뼈저리게 느끼고 그 죄 없으심, 그 완전한 사랑, 절대적 사랑 앞에 그는 다니엘 10장 17절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숨이 끊어진 자같이 되었다.
청결함을 얻으려면
그래서 주님께서 그를 다시 일으키시고 주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게 하셨다. 여러분,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 내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에 이 말씀을 너무나 순진하게 그대로 받아들여서 마음 청소를 오랫동안 해왔다. 마태복음 15장 19절에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은 죄 된 생각뿐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곧 더러운 음란과 간음과 훼방과 질투와 시기와 살인과 우리가 셀 수 없이 많은 우리의 죄악의 생각들, 그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지 씻지 아니한 손으로 먹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않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말했던 이 부정, 더러움은 육신의 더러움이 아닌 마음의 더러움, 마음의 부정을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물론 더러운 손으로 먹어서 병에 걸릴 수도 있다. 씻고 먹어야 된다. 또 부정한 음식을 먹어서 몸이 망가질 수 있다. 그것은 육신의 이야기다. 그것을 섞어서 말하면 안 된다. 주님께서 말씀 속에서 말씀하신 것은 우리 마음의 부정함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더러워진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생각이 우리의 영혼을 더럽힌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깨끗한 자가 아니다. 깨끗할 수 없는 존재이다.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이라고 말씀하셨다. 청결할 수 없는, 깨끗해질 수 없는 인간을 주님께서 정결케, 깨끗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신 것이다.
마태복음 12장 33절로 37절까지 말씀을 보면 이미 말씀 드렸지만 죄와 심판에 대한 말씀을 주님께서 하셨다. 그것은 우리의 죄의 근본, 죄의 유전자가 정결케 되지 않는 이상 죄 된 생각, 죄 된 마음이 없어질 수 없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이 죄 된 마음을 품지 않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 이미 죄의 유전자가 있기 때문에 그것은 자동으로 나오게 되어있다. 평생 죽을 때까지 나온다. 잠잘 때도 나온다. 이것은 도저히 해결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 주님의 사랑의 유전자가 우리 안에 생기지 않으면, 이것이 창조되지 않으면 사랑의 마음이, 청결한 마음이 절대로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5장 8절
- 마태복음 5장 3절
- 시편 90편 10절
- 다니엘 10장 3,4절
- 다니엘 10장 17절
- 마태복음 15장 19절
- 마태복음 12장 33-37절
- 요한계시록 19장 4절
- 에스겔 36장 24,25,26,27절
- 빌립보서 2장 13절
- 잠언 3장 5,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