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불쌍히 여기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

by blogstar posted Jan 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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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으로부터 오는 기쁨

마태복음 25장 35~40절 주님께서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40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말씀하셨다. 아멘!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림을 느낀다. 동정 없는 사랑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사랑이라는 집에는 동정이라는 문패가 항상 붙어있다. 성경을 읽을 때에 이 동정, 불쌍히 여긴다, 긍휼이 여긴다는 그 말씀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늘 경험한다. 다시 말하지만 동정 없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사야 58장에서도 주님께서는 가장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다른 이들의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고 고통당하는 자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고 배고픈 자들에게 그들의 마음이 움직여서, 견딜 수가 없어서 자신들의 음식을 내어주는 자들을 가지신다. 그들이 마지막 이 지구상에 역대에 파괴된 기초를 복구시키고 회복시키는 진정한 종교개혁의 마지막 주자들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여러분, 동정이라는 이 물건이 우리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이상 베풀 수 없다. 줄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사랑의 근본이 동정이라고 늘 그렇게 생각한다.

욥은 말했다. “이는 내가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줄 자 없는 고아를 건졌음이라 망하게 된 자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의 마음이 나로 인하여 기뻐 노래하였었노라. 내가 의로 옷을 삼아 입었으며 나의 공의는 도포와 면류관 같았었느니라 나는 소경의 눈도 되고 절뚝발이의 발도 되고 빈궁한 자의 아비도 되며 생소한 자의 일을 사실하여 주었으며” 욥기 29장 12절로 16절의 말씀이다.

욥이 왜 하나님의 복을 받았는지를 우리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그의 손을 통해서 소경의 눈이 되어 주었고 절뚝발이의 발이 되어 주었다. 배고픈 자의 손에 따뜻한 음식을 놓아주는 하나님의 손이 되었다. 분명한 것은 욥도 우리 모두도 다 그러한 진정한 본능적 사랑이 우리 안에 없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내 이기심의 죄를 주님 앞에 다 내 놓았을 때 주님의 사랑이, 동정의 마음이 내 안에 들어왔고 그렇게 살아지도록 만드셨다. 그래서 양보하고 희생할 수 있게 되었다. 즐겨 양보하고 즐겨 희생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을 동정하고 그들에게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양보하고 희생했을 때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기뻤고 행복했다.

행복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어쩌면 세상은 우리의 동정의 말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사야 42장 2, 3절의 말씀에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이사야는 노래하기를 “그는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 하시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 하시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어떠한 삶을 사셨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말할 수 없는 동정과 사랑 때문에 병자를 보고 지나가실 수 없었다. 그의 몸이 다 무너질 정도로 힘든 저녁, 새벽녘까지 그는 자기를 찾아온 환자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그들의 질병을 당신이 친히 짊어지셨다고 말한다.

마태복음 8장 17절에 그는 우리의 질고를 지셨다고 말씀하신다. 그가 치료해 주었던 수많은 병을 친히 짊어지시고 십자가로 가지고 가셨다. 그 모든 질병의 원인인 죄를 짊어지심으로 그들의 질병을 짊어지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죄와 함께 영원히 사라지셨다. 그들의 고통과 눈물을 영원히 없애셨다. 사랑이 그를 죽게 한 것이다. 오, 이 무한한 사랑을 우리가 무엇으로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특별히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그의 편지 가운데 너희가 서로 불쌍히 여기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용납하기를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시고 용납하심과 같이 하라고 바울은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동정 넘치는 사람:바울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유대인의 법 613가지를 완전히 지켰던 사람이다. 그가 빌립보서 3장 6절에 말한 대로 그는 율법으로 흠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율법의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자기를 위하여 지킨 율법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불법이었다. 자기가 의롭게 되고 자기가 복을 받고 자기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지킨 율법들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이기심의 열매들이었을 뿐이었다. 자기 사랑의 열매, 곧 죄의 열매였을 뿐이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다음에 예수님의 자기를 영원히 희생시키면서 까지 그의 영원한 행복을, 생명을 위해 자신의 몸을 버리셨던 그 사랑 앞에서 그는 완전히 죽고 없어져 버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긍휼과 동정으로 채워지고 그리고 그는 어쩌면 신약의 사도들 가운데 어느 누구에게도 비기지 않을 만큼 풍성한 사랑과 긍휼과 동정을 가진 사도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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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빌레몬이라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자기 밑에 와서 예수님을 배우고 깨달았던 오네시모를 위해서 편지를 보낼 때, 남의 종이 되었고 빚을 지고 도망 온 이 사람의 빚을 내가 다 갚을 테니까 이 불쌍한 형제를 다시 한 번 받아 주게나, 그가 진 빚은 내가 다 갚아주겠노라고 했다.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는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바울의 그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 너무나 풋풋하게 우리에게 느끼게 해준다.

그는 자기가 지금 쇠사슬에 묶였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그는 정말 긍휼이, 동정이 넘치는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형편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가 쇠사슬에 묶인 이것 때문에 복음이 더 힘 있게 전해지는 것을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내가 사는 것은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영혼들에 대한 사랑, 죽어가는 영혼들에 대한 불쌍히 여기는 동정이 바울을 그리스도처럼 만들었다. 그리스도가 그 안에 계셨기 때문이었다.

동정의 힘

동정의 말 한마디 친절한 행동 하나하나는 피곤한 어깨에 지워져 있는 무거운 짐을 내려 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사심이 없는 친절한 말과 동정의 행동, 그것은 잃어버린 인류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우리가 얼마나 사랑의 말, 친절의 말, 동정의 말을 하는 일에 어색하고 인색한 사람들인지! 사랑을 동정을 표현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 동정의 말 한마디가 죽어있는 영혼을 살리는 생명수가 되는 것이다. 그 위로의 말 한마디가 세상에 할퀴고 상처받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명과 희망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살인하지 말라” 그 계명은 우리가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일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을 기억해해야된다. 내가 사랑을, 아름다운 친절과 동정을 주지 아니하고 표현하지 아니한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은 곧 하늘이 볼 때는 살인행위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나누지 않은 사랑, 우리가 전해 주지 아니한 복음, 그것은 수많은 영혼들을 죽게 만든 것이다.

그리스도는 끊임이 없는 사랑의 샘이요 동정의 샘이시다. 그에게서 나타난 표정과 말과 행동은, 그의 삶은 전체가 우리 죄인들을 향한 사랑과 동정의 샘의 넘치는 물줄기였다. 그것이 흘러가는 곳마다 새로운 생명을 살려냈다. 그는 자신의 궁핍과 고통을 기억하지 않았다. 자신의 십자가와 죽음을 기억하지 않았다. 그에게 보인 것은 우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자식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십자가도 대못도 채찍도 가시관도 보이지 않았다. 자식을 향한 사랑과 그분의 동정이 십자가로 그를 기꺼이 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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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잘못을 범한 자들, 시험을 당하는 자들을 궁핍과 죄의 희생물이 된 가련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을 때 그들을 도와줄 가치가 있을까 하고 묻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하면 그들을 구원할 수 있을까,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만 묻는다. 돈이 있고 높은 지위에 있으니까 그들은 도와주고, 비천하고 이름 없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가장 비천한 사람들 속에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면서까지 구원하시려고 피를 쏟으셨던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는 것이다. 망가진 수많은 인생들 속에서, 꺽여진 그 갈대들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보는 것이다. 영혼을, 돈이 아닌 세상의 어떤 것도 아닌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영혼들을 보게 된다. 사랑하는 여러분, 긍휼이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2:7).

성경구절

  • 마태복음 25장 35-40절
  • 이사야 58장
  • 욥기 29장 12-16절
  • 이사야 42장 2,3절
  • 마태복음 8장 17절
  • 빌립보서 3장 6절
  • 마태복음 2장 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