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생수 장사, 예수님

by blogmaster posted Jan 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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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 여자

이 생수에 대한 이야기, 성령을 나타내는 생수의 이야기의 시작은 사실 요한복음 4장에 시작이 된다. 구약에 나타난 모형을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사용하고 계신다. 요한복음 4장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이방인과 같은, 정확하게 이방인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닌, 유대인이었지만 이방의 포로로 잡혀가서 이방인들과 피가 섞인 잡족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사람들은 오히려 이방인보다 못한 사람들이라고 취급받았다. 피가 섞여진 무리들이다. 이방인들보다 더 멸시와 천대를 받은 사마리아인들이다. 그 가운데에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는 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전도하신 대상이 유대인만이 아니고 유대인과 피가 섞였던 어쩌면 정말 ‘잡족’인 죄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진 것을 보게 된다. 

특별히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이 사마리아 여자는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수님께서 그를 만나셨을 때는 이미 그 사람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같이 사는 남편도 정식 남편이 아닌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한 여인을 찾아가시는데 대낮이었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 쬐이는 그 길을 주님께서 이 여인을 찾으려고 가신다. 드디어 우물가에 앉았고 제자들은 때가 되어서 아마도 빵을 사려고 마을을 들어갔던 것 같다. 그때에 혼자계신 예수님 앞에 부스스한 눈을 닦고 오는 한 여자를 보게 된다. 이 사람은 어쩌면 창녀였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때 주님께서 이 여인에게 요청을 하신다. 내게 생수를 좀 달라고. 그 우물, 야곱이 팠던 우물이라고 전해져 내려오는 바로 그 우물이다. 

유대 광야, 사마리아 광야에 있어서 물은 정말 생명과 같은 것이다. 물이 없으면 죽는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물을 달라고 요청하실 때, 이 여자가 보아하니 당신이 유대인 양반인데 우리 같은 사마리아 상놈 출신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대답을 한다. 더군다나 남자가 여자한테 그 당시 쉽지 않은 이야기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신다. 네가,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지금 그런 말을 하는데 만약 나를 안다면 절대로 그렇게 안했을 것이다. 그러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라, 그리고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물이 될 것이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한다. 놀라운 이야기이다. 

그때에 여자가 비로소 마음을 열어 놓는다. 보아하니 특별한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은데 제발 그런 물이 있으면 나에게 좀 주십시오. 그래서 다시 여기 물 길러 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때에 예수님이 요한복음 4장 16절의 말씀하신다.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어쩌면 예수님이 ‘네 남편을 불러오라’는 이 말은 그 여인에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마치 무언가를 알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예수님은 이미 그 여인의 과거를 일기장 보듯이 보고 계셨다. 이 여인이 말한다,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그 말을 얼른 받으셔서 “네 말이 옳다, 네 남편이 다섯 명이나 있었는데 지금 사는 남편도 남편이 아니지.” 이 여자가 어떻게 자기 입으로 자기 부끄러운 과거를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낯이 두꺼운 사람이라도 그렇게 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생수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말씀하신 것은 생수 받을 통을 가지고 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통을 가져오라, 줄 테니까.” 그런데 “저는 통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말씀이 “네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있는 남편도 남편이 아니지, 네가 가지고 있는 통은 생수 받을 통이 아니라 오물통이지.” 그런 의미다. 그 여자가 가지고 있었던 죄악의 오물통을 주님께서 지적하신다. “네 말이 맞다. 네가 가진 통은 오물통이지” 왜 주님께서 그 말을 하시는가? 여러분, 사람은 자기 죄를 스스로 공개할 만큼 그렇게 용감하지 않다, 정직하지 못하다. 주님께서 그 여자의 오물통을 그 여자 앞에 보여주면서 이것 네 것이지? 그리고 그 오물통을 그 시간 다 엎어버리신 것이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통해서 배워야할 중요한 교훈은 주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러 오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회개시키려고 오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우리의 죄를 밝힐 수 없고 내놓을 수 없는데 주님께서 그것을 꺼내신 다음에 완전히 엎어서 그 오물을 비워 버리시고, 그 오물통을 깨끗이 씻어서 생수를 받을 수 있는 생수통으로 만드신 다음에 생수를 부으신다는 것이다. 이 여자는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서 딴소리를 한다. 그 당시에 종교적 논쟁, 당신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리자고 그러는데 우리는 이 사마리아에서 예배드린다고 배웠습니다, 어느 말이 맞습니까? 예수님이 그 말씀도 아주 지혜롭게 받으셔서 정확하게 결론을 내려 주신다. 요한복음 4장 21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수님께 지금 예배할 장소가 어디냐고 물었는데 예수님은 예배장소는 이야기 하지 않으시고 예배할 때가 중요하다.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중요하다 말씀하신다. 그러시면서 주님께서 23절“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여기 ‘신령’이라는 말은 본래의 말이 ‘영’이다. ‘진실’ 혹은 ‘진리’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똑같은 단어이다. “성령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여기에 성령과 진리 안에서 예배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성령은 분명히 성령이지만 진리는 바로 예수님 자신이시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오나니 바로 이때라” 왜 이때인가? 내가 너의 죄를 용서하러 왔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아버지 하나님은 영이시니” 성령, 진리이신 예수님, 아버지 하나님, 다 영이시다.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고 말씀하신다. 곧 지금이다, 바로 지금이다. 내가 네 앞에 왔다, 너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왔다. 너를 위해 죽으러 왔다. 내가 메시아라고 말한다.

그때에 이 여자가 메시아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들의 소망은 메시아밖에 없다. 메시아가 와서 우리를 구원해주고 예배하게 해주는 것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때에 주님이 분명하게 그 앞에 말씀하신다. 2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에게 말하는 내가 그니라” 내가 ‘메시아’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라고 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리스도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메시아’라는 말의 헬라어이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의미) 주님께서 그 말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런 말을 하면 예수님을 자기가 ‘메시아’라고 했다고 잡아서 죽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을 로마나라에서 해방시켜줄 정치적인 왕을, 메시아를 기다렸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메시아로 오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보는 것처럼 예배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씀하셨다. 예배는 이 오물통을 깨끗이 메시아의 피로 씻어서 깨끗하게 된 통에 메시아가 주는 생수를 담을 때에, 곧 성령을 땀을 때에 구원이 완성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으로 성령과 생수와 진리 되신 그리스도, 메시아 되신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받고 성령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참으로 감사해서 엎드려 절하는 예배가 이루어진다고, 그 말을 예수님이 함축해서 말씀하고 있다. 

이 여자는 성경을 아는 여자이다. 구약을 아는 여자이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자기 앞에 자기를 위해 돌아가시기 위해서 오신 ‘메시아’를 본 것이다. 예수님이 자기를 정결케 하고 생수를 부으려고, 성령을 부으려고 오신 바로 ‘메시아’인 것을 보게 된 것이다. 기억하라! 이 여자는 엄밀하게 말하면 남자를 찾은 것이 아니라 사랑을 찾았다. 뭇 남자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해서 그 남자들에게 몸을 바치고 자기 인생을 맡겼다. 그러나 아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그 여자에게서 꿀을 다 빨아먹고 가버렸다. 또 다음 남자 설마, 아니다. 이 사마리아 여자가 찾았던 것은 사랑이었다. 사랑이라는 생수를 찾았다. 그러나 어떤 남자도 아니었다. 다 자기의 피를 빨고 도망을 갔다.

진정으로 자기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그를 위해서 피를 흘리신, 그리고 영원한 생수를 영원한 사랑을 부어주실 진짜 메시아를 만난 것이다.

이 여자가 물동이를 놓아두고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 나를 위해 돌아가실 구주를 만났다! 고 그 마을에 가서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외쳤던 것이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바란다.

성경구절

  • 요한복음 4장 16절
  • 요한복음 4장 23절
  • 요한복음 4장 26절
  • 요한복음 4장 2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