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장막절의 성령

by blogmaster posted Jan 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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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장막절의 성령

장막절이라는 절기

요한복음 7장 37절로 39절의 말씀,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 하신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여기 예수님이 장막절 끝 날이라고 부르는 날에 성전에 서셨다. 장막절이라는 절기는 유대인 절기 중에 7월 15일부터 21일 까지 있는, 물론 유대인 음력의 절기다. 이 절기는 사실은 유대인 절기의 맨 마지막 가을절기인데 이때는 모든 과일, 소산물들을 다 거둬들여서 저장하는 때이다. 그래서 이것을 흔히 수장절이라고도 한다. 추수한 것을 저장한다는 뜻이다. 이 초막절 혹은 장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살았던 그 고생을 기억하고 그 가운데서 어떻게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셨는지를 하나님께 기억하고 감사하는 그런 절기인데 그 절기에 대해서 요한계시록의 기록을 보면 우리가 하늘에 가서 천년 동안 사는 동안에 세상의 고통을 다 잊어버리고, 지상에 사는 동안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추억을 기념하는 그런 절기라고 볼 수 있다.

요한계시록 7장 15절부터 보면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여기에 ‘장막’이 나타난다. 16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 할찌니” 이 말씀가운데 보면 하늘에 가서 천년동안 사는 동안 이 땅에서의 모든 어려움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장막아래에서 편히 쉬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요한복음 7장에 예수님이 ‘장막절 끝 날에’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끝 날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장막절이 끝나는 다음 날인 7월 22일이다. 그것을 장막절의 여덟 번째 날이라고 부르는데 그 여덟 번째 날에, 곧 정확하게 7월 22일이다. 이 날에 예수님께서 성전에 서셔서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시는 것이다. 당시의 유대인 풍습에 보면 성전에서 옛날 반석으로부터 물이 터졌던 것을 기념해서 제사장이 물을 갖다가 성전 마당에 부었었다. 그것이 골짜기를 타고 기드론 시내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이 예식을 하는 동안에 예수님이 성전 마당에 서셔서 큰 소리를 지르시는 것이었다.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시라!” 이 7월 22일 장막절 제8일은 유대인들은, 유대인 명절 중에 맨 끝 명절인 이 날을 그들의 말로 ‘심핫트 토라’라고 부른다. ‘토라’는 ‘율법’이고 ‘심핫트’는 ‘기쁨’이다. 율법을 기뻐한다. 즐거워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 성취되어서 이스라엘이 평안히 거하게 되었다는 것을 기념하는 의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도 그렇게 한다고 한다. 성경을, 양가죽에 기록한 두루마리로 된 성경은  끌어내어 품에 안고 성전을 빙빙 돌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는 것이다. 이 ‘심핫트 토라’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의 명절이 끝나는 구속의 역사, 즉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끝이 나는 시간이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에 똑같이 기록이 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로 5절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새롭게 창조하신 다음에 소리를 지르시는 똑같은 장면이 나온다. 

모든 것이 사랑이다

요한계시록 21장 6절,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요한복음 7장 35절, 36절에 말씀하신 예수님이 장막절 끝 날에 성전에 서셔서 그 구속의 역사가 마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던 그 날과 똑같이 요한계시록 21장 6절에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시라! 하고 소리를 치신 것이다. 성령이 부어지신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모형이다. 왜 이런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었는가? 먼저 우리는 창조 당시의 이야기로 돌아가야 한다. 창조 당시에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 31절“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좋았더라’는 말 가운데는 건강과 아름다움과 행복이 다 포함되었는데 그중에 가장 중요한 의미는 이 심히 좋았던 상태는 무죄, 죄가 없던 상태다. 거듭 말하지만 죄는 자기사랑이다. 그러면 무죄의 개념은 무엇인가? 자기사랑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이웃만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사랑의 개념이 창세기 1장 31절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너무너무 행복하셔서 모든 것이 사랑이다. 천사도, 사람도, 아들도, 아버지도 다 주는 것 밖에 모르는 무한한 사랑의 기쁨, 그것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신 것이다.

창세기 2장 24절에 사랑으로 하나가 된 것이다.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로다” 이것이 조건 없는 무아적 사랑으로 부부가 하나가 된다. 이 부부가 하나 됨의 사랑, 이 무아적인 사랑으로 하나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 집에 갔는데 아들과 며느리가 너무 사랑하고 행복하면 그것을 보고 아버지는 너무 기쁜 것이다. 그들 이상으로 기쁜 것이다. 이 무아적 사랑으로 부부가 하나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무아적 사랑으로 하나 된 부부에게 자신을 주신다. 그것이 곧 영으로 계신 하나님, 즉 예수님이 사람으로 되시기 전의 때이다. 이것은 영이다. 세분의 하나님께서 영이신데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그들을 위해서만 자기를 구별하는 구별의 영, 성령이다.

아모스 3장 2절“내가 열국 백성 중에서 너희만 알았다”고 하신다. ‘너희만’ ‘만’자가 붙어 있다. ‘알았다’는 말은 ‘동침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으로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영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구별하여 주신다. 부부가 무아적 사랑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다 준다. 그래서 하나가 되었다. 이것이 여섯 째 날이다. 그 다음 날 일곱째 날인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오셔서 자신을 주신다. 그 때는 ‘영’이다. 영으로 계신 것이다. 거룩의 영, 우리에게만 자신을 구별하여 주신다. 그래서 ‘성령’이다. 자기를 주셔서 하나 된 우리와 하나님 우리 아버지 세분이 하나가 되셔서 자기를 주어서 완전히 인간과 하나님 아버지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 됨’ 이것을 히브리어로는 ‘언약’이라고 하는데 ‘브리트’라는 단어다. ‘브리트’라는 단어는 ‘한 덩어리’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다 주시는 사랑에 너무 행복하셨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세상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창조될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무엇이라 하셨는가? 누구든지 목마르면 내게로 와서 마시라! 값없이 돈 없이 사라! 고 하신다.

요한계시록 21장 6절에 말씀하신 말씀에 세상을 다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우리 모두를 다시 재창조 해놓고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신 다음에, 그 사랑으로 하나 됨 속에 자신을 주시는 성령이다. 성령! 우리에게만 자기를 구별하여 바치는 성령이 다시 들어오시게 되는 것이다. 잃어버린 자식을 다시 품에 안으시는, 그리고 자기를 그들 속에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이 성령이라는 말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이 장막절 끝 날에 예수님이 세상의 모든 죄가 다 해결되고 하나님의 창조가 일어났을 때, 다시 옛날처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마음과 새 영을 가진 새로운 피조물이 된 아담과 하와에게 다시 자신을 주시는 선포를 하시는 것이다.

성경구절

  • 요한복음 7장 37절로 39절
  • 요한계시록 7장 15절로 16절
  • 요한계시록 21장 1절로 6절
  • 요한복음 7장 35절로 36절
  • 창세기 1장 31절
  • 창세기 2장 24절
  • 아모스 3장 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