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자기희생의 성령

by blogmaster posted Jan 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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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드리는 소제

마가복음에도 마태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성령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많이 쓰이지 않았다. 마가복음 13장 11절,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우리가 핍박을 당할 때나 어려운 심문을 당할 때에 우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를 성령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 또한 구약 적 개념이다. 거룩의 영이다. 성소에서 소제로 드리는 제사 가운데 하나가 유대인 달력으로 오순절에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가 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던 것을 나타낸 요제절, 혹은 초실절에 드리는 소제가 있다. 그것이 분명히 구별되어서 소제가 기록된 것을 본다. 나중에 성소를 공부할 때 우리가 그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나타냈던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절기에 드렸던 소제가 아니고 제자들이 성령을 받을 때에 자신들을 드려서 복음의 씨가 되는 소제가 따로 있다.

레위기 2장 14절,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희 소제를 삼되” 다른 소제와 달리 이 소제는 불에다 볶아서 빻았다. 일반적으로 소제는 그냥 곡식을 찧어서 그것을 가루를 내서 하나님께 드렸는데 이 오순절에 드리는 소제는 불에다 볶아서 찧는다. 불이 먼저 나타난 것을 보게 된다. 바울이 말했듯이 예수님의 남은 고난,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고 수많은 영혼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하는 일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바울도 자기가 가지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골로새서 1장 24절,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으로써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말씀한다.

일반소제는 그냥 빻는다. 생 곡식을 빻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요제절, 초실절에 드리는 소제는 정확하게는 이 밀을 불에서 볶은 다음에 빻는다. 예수님은 말 그대로 그냥 그 육체로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세상을 위한 모든 고난을 다 당하신다. 보통 곡식하고 볶아서 빻는 곡식하고 어떤 것이 빻기가 더 쉽겠는가? 불에 볶은 것은 쉽게 잘 부서진다.  성령의 불에 의해서 볶아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고 있는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우리가 볼 수 있다.

세상을 위한 희생의 제물이 되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스도가 받을 고난을 함께 받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받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성령이 오순절의 제자들에게 불같이 임하신다. 그리고 이 사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어서 세상으로 보내고, 세상에서 그들이 고난을 당하고 순교를 당한다. 예수님의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들은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들을 제물로 바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마가복음 13장에 나와 있는 이 말씀을 보면 분명히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8장 18절로 20절에 하신 말씀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분명히 항상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께서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말씀하신대로 내가 너희에게 성령, 보혜사를 보낼 텐데 그가 영원히 함께 계시겠다고 하신다. 이 요한복음 14장 16절의 약속은 주님께서 우리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계시겠다는 그 약속을 대행하시는 분, 실제로 이루시는 분으로서의 성령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용서의 사랑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하지만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하면 세상 끝 날까지 계실 성령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용서의 사랑을 전달하는 자들이다. 그들에겐 복음을 반대하고 대적하는 사단의 핍박이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사단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단은 천사일 것이다. 그들에게 핍박은 면할 수 없는 것이다. 당연히 받을 수밖에 없다, 자연적인 결과이다. 저항을 받지 않는다면 사단은 잠을 자거나 아니면 죽었을 것이다. 사단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핍박이 반드시 올 것을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그 때에 너희가 할 말을 너희 속에 넣어 주시는 이가 하나님의 거룩의 영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이것을 주목해야 된다. 하나님의 거룩의 영, 자기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바치신 영, 구별하여 자신을 주신 영, 바로 성령이시다.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을 때에 절대로 저주하지 않는다. 핍박하는 자들을 축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 속에 계신 영은 자기를 희생하신, 자기 아들까지 우리를 위하여 구별하여 주신 바로 그 거룩의 사랑의 영이 그들 가운데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이 성령에 충만해서(행7:55) 했던 마지막 말씀인 기도를 뭐라고 드렸는가? 사도행전 7장 60절“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이것은 성령이시다. 자기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영원히 희생시키셨던, 우리를 위하여 구별하여 정말 마귀같이 되어버린 죄인들을 위하여 자신을 바치셨던 그 거룩의 영이 하시는 말씀은 저주가 아니다.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자기희생의 사랑의 영,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거룩의 영이셨다(요3:34). 누가복음 23장 46절에 마지막으로 자기 손을 아버지 손에 의탁하는 바로 거룩의 영이시다. “예수께서 큰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자기를 제물로 바치셨던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성령이시다.

자기를 죽이는 자들의 죄를 당신이 안고 가시는, 누가복음 23장 34절의 말씀대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곧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에 그들 속에 있었던 영은 세상을 저주하는 영이 아니었다. 너희들 심판 날을 기다려라, 심판 날 너희들 보기 좋게 다 불구덩이에 들어갈 것이다! 라고 저주하는 영이 아니었다. 자신을 죽이는 자의 죄를, 그들의 죄를 가슴에 묻고 자기를 희생의 제물로, 그들의 죄의 제물로 바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성령, 바로 그 거룩의 영(마3:16), 자신을 구별하여 제물로 바치셨던 바로 그 같은 성령이 제자들 속에 계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너희가 어려운 핍박을 당할 때에 말할 것을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니라 그 성령이 말씀하실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핍박은 성령이 받으시는 것이다. 핍박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령을 받은 자로서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시는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온전히 자신을 성령께 드렸을 때 성령이,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통해서 말씀하실 것이다.

과거의 수많은 순교자들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이 정말 놀라운 사랑인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구별하여 바쳤던 그 사랑을 발견하고, 자신들을 죽이는 자들의 죄를 자신들이 끌어안고 가는 순교자들의 그 거룩의 사랑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성령을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성령은 자기희생의 사랑의 영이다. 자기를 희생의 제물로 구별하셨던 예수님 안에, 자기 아들을 희생의 제물로 구별하여 바치셨던 아버지 안에 계셨던 바로 같은 영인 것이다. 그 성령을 우리도 충만하게 받고 성령에 의해서 그렇게 살아지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란다. 

성경구절

  • 마가복음 13장 11절
  • 레위기 2장 14절
  • 골로새서 1장 24절
  • 마가복음 13장
  • 마태복음 28장 18절로 20절
  • 요한복음 14장 16절
  • 사도행전 7장 55절
  • 사도행전 7장 60절
  • 요한복음 3장 34절
  • 누가복음 23장 46절
  • 누가복음 23장 34절
  • 마태복음 3장 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