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

by blog posted Jan 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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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행위:심판

요한계시록 16장 5, 7절,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의롭다고 표현하는 말씀을 볼 수 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언약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는 것을 ‘의’라고 말씀했다는 것을 지난 시간에 배웠다. 

고대 왕들이 자기 밑에 있는 지방의 도지사들과 시장들과 언약을 맺는다. 이 언약관계에 들어가면 밑에 있는 지방의 도지사들과 시장들은 왕에게 매번 세금을 바친다. 지방의 장관들과 왕 사이에 일어난 언약이다. 그런데 어느 날, 지방 도지사가 오늘부터 우리는 세금을 안 내겠습니다하고 약속을 깨트리면 불의한 것이다. 

그러면 왕이 지방 장관들과 맺은 언약은 무엇인가? 왕은 세금을 받고 그 대신 적군이 쳐들어왔을 때 지방을 둘러싸고 포위한 적군을 내려가서 심판하는 것이다. 그들을 여러 불행과 죽음으로부터 구원 하겠다는 것이다. 혹은 질병과 전염병이 만연할 때, 그 병을 중앙 정부가 돈을 내서 치료해준다는 언약(계약)이 맺어져 있다. 그냥 세금만 받고 마는 것이 아니라 보호해 주겠다는 약속을 맺는다. 

그런데 지금 보는 것처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은 언약도 똑같다. 지난 시간에 공부했던 호세아 6장 7절의 말씀, 하나님께서 아버지로써 아들 되는 아담과 언약을 맺는다. 가정에서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우리와 언약을 맺는 것이다. 그래서 호적에 아들과 딸의 이름이 기록된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 아들과 딸의 모든 것을 책임진다. 교육시키고 결혼시키고 결혼시킨 다음에도 계속 자식을 위하여 산다. 사랑의 언약이다. 사랑의 관계가 맺어진 것을 언약이라고 말한다. 

이때에 사랑만 퍼붓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이야기이다. 아들이 불행하게 되면 아들을 불행하게 하는 죄와 괴롭히는 모든 악을 없애는 것이다. 아이가 병에 걸려서 고생을 하면 엄마 아빠는 그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서 집을 팔아서라도 아이를 고쳐줘야 된다. 그게 사랑으로 맺어진 언약의 관계이다. 본능적 사랑이다. 그렇게 안하고는 못산다.

그래서 죄와 악을 없애는 것을 성경에 이름 하여 심판이라고 말하고 있다. 심판의 의미는 사랑의 행위이다. 자식을 괴롭히고 죽이는 죄와 악을 없애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언약 관계 속에서 보지 않는다. 부자간의,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로 맺어진 언약 관계로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단이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에게 돈을 줄 테니까 명예를 줄 테니까 쾌락을 줄 테니까 내가 시킨 대로 해라” 그래서 다른 사람을 짓밟고 죽이고 올라가서 사단이 주는 보좌에 앉는 것이다.

중국의 자금성에 가면 동양의 최고의 황제가 앉는 자리가 있다. 그 이름이 용상이다. 용 ‘용’자에 자리 ‘상’자이다. 그 황제가 거하던 방 안에 얼마나 많은 용들이 있는지 모른다. 천정에도 있고, 의자에도 있고 기둥에도 있고, 용의 천국이다. 그래서 용, 마귀가 내가 너에게 최고의 권력과 부와 명예를 줄 테니 부지런히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짓밟고 올라가라 피를 흘려라 그래서 네가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서 최고의 행복을 누려라, 결론은 마귀가 주는 언약에 동참해서 언약을 맺는 것이다. 그것이 ‘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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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맺은 언약은 무엇인가?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무엇인가? 우리 아버지처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내가 너를 위해 희생 한 것처럼 너도 그렇게 희생하고 자신을 낮추고 사랑하고 용서해라. 그것이 영원한 행복이다.

옛날 왕들이 음식을 먹을 때마다 먼저 음식을 먹도록 한 신하들이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누군가 독약을 넣어서 왕을 죽일 수 있었기 때문에 왕이 드는 음식을 신하가 먼저 맛봐서 괜찮다고 하면 그때야 왕이 그 음식을 먹었다. 항상 불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평화는 자기를 희생하고 용서하고 사랑한 그 사랑의 법에 의해서 사는 사람은 자신을 죽이러 와도 그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그 평안이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평화는 자기를 희생하고 용서하고 사랑한 그 사랑의 법에 의해서 사는 사람은 자신을 죽이러 와도 그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그 평안이다.

의로운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심판이 왜 의롭다고 말했을까? 하나님은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 딸이 고난을 당하고죽임을 당하는 것을 결코 볼 수 없어서 그 죄와 악을 없애는 심판을 하실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심판은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이다.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는 것이지 죄인을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분명히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우리 죄인들 대신 심판하셨고 아들과 함께 죄를 심판하여 없애신 것이다. 이 마지막 심판도 마찬가지다. 세상 역사의 마지막에 하나님이 하시는 심판은 다시는 죄가 없고 다시는 눈물이 없고 다시는 질병이 없고 다시는 고통이 없고 다시는 죽음이 없게 하시기 위하여 죄를 영원히 제거하시는 심판이다.

하나님은 그 사랑의 약속을 지키신 것이다. 문제는 죄인이 죄에게 자기를 맡겨서 죄와 함께 죽기를 원해서 함께 죽는 것이다. 우리가 여러 번 말씀을 찾았지만 에스겔 33장 11절에 악인들을 향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하시는 말씀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돌이키고 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끝까지 죄가 좋고 마약이 좋고 술이 좋고 세상의 쾌락이 좋고 돈이 좋은 자들이 자기를 그 돈과 세상의 쾌락에, 죄에 자신을 묶어서 그것의 저주를 받는다는 말이다. 

마태복음 25장 41절은 주님께서 정말로 아픈 가슴으로 하시는 말씀이다. 본래 저주하다는 말은 자기 자신을 다른 존재에게 묶는다는 뜻이다. ‘묶여진 자’ 수동태이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다시 말하면, 사단에게 자기를 믿음으로 맡겨서 나를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사단에 의해서, 세상 죄에 의해서, 쾌락에 의해서, 마약에 의해서 묶여진 자들이다. 본인의 선택이다. 하나님도 어찌하실 수 없으신 선택이다. 결국은 죄인이 멸망당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란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구원 얻을 자들을 예정 하셨다는 말은 영원 전부터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보셨기 때문에, 우리가 할 모든 결정을 보셨고 죄 짓고자하는 우리를 강제로 막으실 수 없는 하나님의 아픈 가슴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로마서 8장 29, 30절의 말씀을 보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로...미리 정하셨”다고 말한다. 미리 정하신 것은 미리 아셨기 때문이다. 미리 아신 것은 시편 139편 16절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의 미래를 다 보셨다. 그리고 선악간의 큰 싸움 속에서 미리 보시고 그것이 하나님의 책에 다 기록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중요한 말씀이다. 

선악간의 큰 싸움에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호소와 마귀의 유혹 앞에서 어떤 결정을 매 순간 할지를 하나님께서는 시간 밖에서 이미 보셨다. 하나님은 시간밖에 계신 분다. 어항 속에 금붕어를 한눈에 볼 수 있듯이 우리의 삶의 시작과 중간과 끝을 이미 다 보셨고 우리가 그 순간마다 어떤 결정을 할 것을 보셨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호소에 자기를 맡길 것을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호소를 끝까지 거절할 것을 보시고 어쩔 수 없이 아픈 가슴으로 그대로 정하셨다고 말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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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예지, 미리 아셔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결정을 어찌할 수 없어서 그대로 인정하시는 예정설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 하나님의 언약, 즉 우리를 끝까지 구원하시고 악을 제거하시겠다는 심판, 하나님의 그 의로우심에 우리가 믿음으로 자신을 맡겨서 죄와 악이 다 제거되고 구원에 이르게 되기를 바란다.

키워드 : 하나님, 의, 심판, 언약, 에스겔, 로마서, 예지, 예정

성경구절

  • 요한계시록 16장 5,7절
  • 호세아 6장 7절
  • 에스겔 33장 11절
  • 마태복음 25장 41절
  • 로마서 8장 29,30절
  • 시편 139편 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