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를 주신 목적
하나님께서 성소를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 성소가 우리에게 주어진 목적은 출애굽기 25장 8절 가운데서 말씀하신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지어달라고 부탁하신다. 그들 중에 거한다, 우리와 같이 사신다. 이 말씀은 히브리어로 거한다, 어디어디 산다, 거주한다는 뜻의 ‘샤칸’이라는 단어이다.
‘샤칸’이라는 동사가 명사가 되면 ‘미쉬칸’이라는 ‘성소’를 가리킨다. ‘거하는 장소’, ‘하나님께서 계시는 장소’이다. 우리와 같이 계시기를 원하셨다. 이 ‘샤칸’이라는 동사가 명사가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쉐키나’이다. 성소의 하나님의 법궤위에 하나님이 앉으시는 보좌라고 하는 속죄소 위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영광을 ‘쉐키나’라고 흔히 부른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와 같이 있겠다고 하시는 중요한 모형이었다.
화염검을 두신 이유(샤칸하신이유)
에덴동산의 성소는 원시성소라고 한다. 그 원시성소에 보면 인간이 범죄 한 다음에 하나님께서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지 못하도록 하고 계신 것을 보게 된다.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지 못하게 한 이유는 분명하다. 만약 생명나무 열매를 죄인이 먹었다면 그 죄지은 상태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그 죄지은 상태의 결과로 병들고 슬프고 고통당하는 인간의 고통이 계속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했는데 왜 사람을 에덴동산에서 내쫓고 생명나무의 길을 막았는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영원한 고통을 막으신 것이다. 로마서 6장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러면 영생만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인가? 아니다, 인간의 범죄 후에 인간을 잠들게 하신 것, 흙으로 돌려보내신 것 자체가 은혜이다. 인간이 자기가 범한 죄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서 영원토록 죽지 않고 고문을 당한다는 것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가슴에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자식이 영원히 고생하는 것을 하나님은 절대로 용납하실 수 없었다.
그래서 마땅히 죽어야 하지만 “네가 범죄 한 그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던 창세기 2장 17절 말씀은 어린양,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정녕 죽게 하시고 당신의 아들과 딸은 창세기 3장 19절에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말씀하신다. 곧 고통을 끝내주시는 하나님, 그리고 다시 흙에 가있으면 내가 다시 만들어 부활시키겠다는 부활에 대한 약속이다.
그런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동편에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신 이유, ‘샤칸’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인간의 불행이 계속되는 것을 영원히 종식시키고 다시 우리를 부활 시켜서 새로운 죄 없는 사람으로 우리를 다시 창조하시기 위하여, 그래서 우리가 죄 없는 몸과 마음으로 부활할 때 비로소 생명나무를 먹고 그 행복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원하셨던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의 표현이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 성소에서 계속해서 죽임을 당하시는 어린양으로 나타난다. 아담과 하와는 창세기 3장 21절에 그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가죽옷을 입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용서의 영수증을 입고 그리고 에덴동산 밖으로, 흙으로 돌아가서 다시 만들어주실 날을 기다리고 사는 것이다.
속죄하시기 위해서 제사하심
샤칸! 우리와 같이 거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에덴동산은 인간이 범죄 한 뒤에도 계속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기를 원하셨고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셨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서 성소를 지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이 성소에서 계속해서 레위기 1장 4절, 제물을 잡게 하시고 제사를 드리신다. 그것은 속죄하시기 위해서, 죄를 다 없애시기 위해서이다.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은 그냥 계시는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성소 안에서 죄인의 죄를 대신하여,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계속해서, 계속해서 죽어 제사 제물로 바쳐지는 아픔이 계속되는 장소가 성소이다. 죄인의 죄 대신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이것이 성소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이다.
끊임없이 아침과 저녁으로 상번제를 드린다. 이것은 하나님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는 것 또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죄가 끝나기까지 하나님은 계속해서 고난을 당하신다. 히브리서 7장 25절, “그가 항상 살아서”, 성소에 살아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를 능히 구원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죄를 향한 아픔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간구하시는 그 모습!
히브리서 5장 7절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받으신” 예수님. 구속을 완성하셨지만 죄인이 그 놀라운 용서의 은혜를 받아들이기 까지는 그분의 아픔이 계속되는 것이다. 성소에 계신 예수님의 고난, 죄인을 향한 아픔!
골로새서 1장 24절에 바울은 그 예수님의 남기고 가신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고 말하고 있다. 세상을 향한 주님의 아픔, 그것은 계속되는 것이다. 특별히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은 오늘도 그 핍박과 고난을 받고 계시고,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아픔이 계속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울이 바울이 되기 전, 대제사장들로부터 권세를 얻어서 수많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려고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난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대로 그는 다메섹 길 앞에 쓰러지면서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하는 음성을 듣는다. 주님은 세상을 구원하는 당신의 몸 된 교회를 통해서 고난을 계속 당하고 계신 것이다. 세상의 죄로 인한 고난, 동시에 핍박받는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자기의 몸 된 교회를 통해서 계속해서 핍박을 받고 계신 것을 보게 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고난이 계속되고, 우리의 죄로 인한 그분의 아픈 가슴이 계속되는 것은 성소에 계신 하나님의 아픔이다. 다시 말해 성소는 끊임없이 양이 죽임을 당하는 장소이다. 양은 분명히 예수님이시다. 죄인의 속죄를 위한 고통이 계속되는 장소가 성소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아들을 희생시키시면서까지라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 죽음을 넘어선 사랑이 이 성소 안에 나타났다.
그래서 성소는 다시 얘기하지만 마음을 펼쳐놓은 장소이다. 성소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의 마음이 어떠하다는 것을 우리는 성소를 통해 보는 것이다. 요한복음 2장 19절로 21절에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신다. 이유는, 성소는 예수님 자신을 가리켰다. 그래서 그 당시 제사장들이 돈을 주고 수많은 장사들을 거기서 할 때에, 짐승장사, 비둘기장사 들을 할 때에, 그것을 다 몰아내신 다음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것이다.
19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이 성전은 분명 21절에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죽임을 당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이다. 성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가슴은 피 흘리는 가슴이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분은 끊임없는 아픔을 당하시는 것이다.
태그:성소,쉐키나,법궤,속죄소,에덴동산,화염검,생명나무,하나님의 사랑,영생,죄의 삯,하나님의 은사,어린양,속죄,핍박
성경구절
- 출애굽기 25장 8절
- 로마서 6장 23절
- 창세기 2장 17절
- 창세기 3장 19절
- 창세기 3장 21절
- 레위기 1장 4절
- 히브리서 7장 25절
- 히브리서 5장 7절
- 골로새서 1장 24절
- 요한복음 2장 19~2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