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막달라 마리아
성소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누가복음 7장에 나온다. 창녀 마리아는 마귀에게 자기 몸을 바쳤던 마귀의 성소였다. 누가복음 8장 2절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이 창녀 마리아의 도움을 받으셨는데, 그 여인은 본래 일곱 귀신이 들렸던 마귀의 집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창녀 마리아에게 들어간 마귀를 내쫓아주시고 죄를 용서하셔서 집으로 돌려보내신다.
이 여인은 막달라인이라고 불렸는데 ‘막달라’는 갈릴리 호수 주변에 있는 유곽지역이다. 거기에 술 팔고 몸을 파는 여자들이 살았다. 아직도 그곳에 마을이 있다. 과거에 그곳이 유흥가였다. 그곳에 있던 여인이 예수님께 구원을 얻고 예수님은 이 여인을 자기 고향 베다니로 돌려보내신다.
성경에 보면 이 여인에 관한 기록이 여러 가지로 공통점이 있는데, 예수님 말씀이 이 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복음이 전해지는 어느 곳에서든지 전해달라고 부탁하셨다. 그 부탁하신대로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다 이 여인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누가복음에는 7장에 그 기록이 나온다. 사실 다른 복음서에는 다 뒷부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있었던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오직 누가만이 중간의 기록으로 그 기록을 남겨두었다.
이유는 누가복음 7장 34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여기 특별히, 예수님을 ‘죄인의 친구’라고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죄인의 친구’라는 말에 대한 설명을 한다. 그것이 36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부분에 있었던 이야기를 끌어다가 예수님이 어떤 죄인의 친구이셨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누가복음 7장 36, 37절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리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님께서 죄인의 친구라고 하셨는데 어떤 죄인의 친구인지를 이 사건을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죄인인 한 여자가 예수님께서 그 집에 오셔서 식사하신다는 소리를 듣고 38절, 몰래 뒤로 와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라고 기록한다.
히브리말이나 헬라 말에 동일하게 ‘예배한다’ ‘경배한다’는 말은 ‘엎드려 절한다’는 말이다. 구약에서는 히브리어로 ‘샤하’라 하는데 뜻은 ‘엎드려 절 한다’ 신약에서는 헬라어로 ‘프로스쿠네오’라고 쓴다. ‘프로스’는 ‘앞으로’라는 뜻이고 ‘쿠네오’는 ‘입 맞추다’는 뜻으로 ‘엎드려 입 맞춘다’ 그것이 ‘예배한다’는 말이다.
바로 이 막달라 마리아라고 불리는 창녀 마리아가 그 날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입 맞추고 한없이 우는 모습을 보인다. 이 여인이 자기를 구원해주신 예수님, 귀신을 내쫓아 주시고 자기를 용서하시고 집으로 돌려보내 주셨던 이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에 너무 감사해서 엎드려 우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가장 소중한, 어쩌면 자기 전 재산을 다 주고 샀을 향유를 깨뜨려서 예수님이 돌아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의 발에, 몸에 붓는 것이다.
아마도 그 당시의 이 창녀 마리아는 창녀출신이기 때문에 자칭 깨끗한 바리새인들이나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 천대를 받는 그런 여인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돌아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나중에 예수님의 몸을 자기가 염을 해드리고 장례를 치러드리고 싶은데도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이렇게 했다고 생각이 든다.
이 여인은 예수님이 자기 죄를 용서하셨는데, 그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셔야 된다는 생각에 더 많이 울었을 것이다. 한없이 울었을 것이다. 그 눈물로 발이 적셔지자 준비해오지 않았던 수건 대신 그는 머리를 내려서 주님의 발을 닦고 입을 맞춘다. 그리고 향유를 붓는다. 예배이다. 정확하게 예배를 드린 것이다. 엎드려 입 맞추고 그리고 예물을 드렸다. 성경 상 예배는 항상 똑같다. 용서받은 죄인이 엎드려 절하는 것이다. 입 맞추는 것이다.
옛날 이방 왕들이, 힘센 왕들이 다른 나라 왕들을 죽이지 않고 포로로 끌어다가 이렇게 했다. 마땅히 죽어야 되는데 안 죽이고 살려주었다. 그러니까 벌벌 기어서 큰 왕의 발밑에 와서 발을 붙잡고 입을 맞췄다. 안 죽이고 살려줬다고 해서 은혜에 감사하다고 그런 행동을 했다고 한다. 그러한 똑같은 예배가 여기서 드려지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찢겨져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시고 그 은혜로 용서받은 죄인이 주님 앞에 엎드려 자기를 맡기고, 바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이 그에게 주신 용서, 자기의 피와 물과 목숨을 다 주신, 구별하여 이 여인에게 자신을 주신 사랑을 받은 이 창녀 마리아가 그 용서의 사랑에 녹아져서 용서받은 창녀로서 다시 자기를 구별하여 바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이 자신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셔서 여인에게 주셨고, 그 구별하여 주신 사랑을 받은 용서받은 창녀가 이제는 성녀가 된다. 말 그대로 주님께 몸과 마음을 바치는 여자로 변한다. 온전히 바친다. 성녀, 거룩한 여자가 된다.
예배
거룩이 거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거룩하게 한다는 말은, 구별하여 자신을 주님께 바친다는 말이다. 구별하여 주시는 사랑을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분이 피도 물도 목숨도 다 죄인을 위해 자기를 구별하여 바치신 그 사랑을 받은 사람만이 주님께 용서받은 죄인으로서 자기를 다시 한 번 주님께 구별하여 바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는 거룩한 존재들의 잔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 거룩한 존재들이다. 용서받은 죄인들이 자기들의 몸과 마음을 다시 주님께 온전히 구별하여 바치는 그것이 예배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아들을 제사로, 제물로 바치신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이다. 그 제물을 받고 용서받은 죄인들이 이제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는 거룩한 존재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용서받은 죄인만 예배할 수 있다. 참으로 용서받은 죄인만 자신을 하나님께 다시 돌려드리게 된다. 그래서 십자가 없이는 예배가 없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죄를 용서하신 사랑을 정확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가 현재 누리고 있는 세상의 기쁨과 즐거움과 쾌락과 돈과 텔레비전과 세상이, 명예가 좋다. 그 욕심을, 돈이라는 우상을 절대로 내놓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구원받았다고 스스로 자기를 위로하고 자기가 스스로를 기만하고 그렇게 산다.
정말 이 막달라 마리아처럼 자기의 욕심과 이기심과 교만과 더러운 정욕이 다 폭로되어 드러나서 더러운 죄인이 된, 그래서 다 용서받은 이 죄인만이 자기를 구별하여 주님께 드리게 된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영원한 성소이며 피난처이고, 예수님은 자기를 창녀에게 다 주어서 그를 용서하시고 그를 다시 구별하셔서 그가 예수님의 성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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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누가복음 7장
- 누가복음 8장 2절
- 누가복음 7장 34절
- 누가복음 7장 36,37,3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