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놀라운 아버지의 사랑

by blogstar posted Jan 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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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심판의 때

지난 시간에 이어서 하나님의 의의 열매, ‘디카이오마(δικαίωμα)’가 심판의 기준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겠다. 요한계시록 19장 8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여기 이상한 말이 나온다. 이 요한계시록 19장요한계시록 17장부터 시작되는 타락한 종교단체들에 대한 심판이다. 소위 바벨론이라고 부르는데, ‘바벨론’은 ‘섞였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진리와 세상의 거짓이 섞여서 혼잡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순수한 복음, 구원의 진리를 세상의 것과 마귀의 거짓과 섞어 놓아서 사람들이 분별할 수 없도록 만든 거짓 종교단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슬프게도 그런 일들은 오늘 기독교 안에도, 세상의 모든 종교 안에도 계속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심판의 이야기는 곧 세상 역사의 마지막에 있을 거짓 종교 단체들에 대한 심판이다. 죄의 역사가 끝이 나는 이 마지막 심판의 때에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찬양을 받으신다. 이제 죄의 역사가 끝이 났다는 사실을 선포한다.

요한계시록 19장 6절,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하나님의 통치가 드디어 회복된 것이다. 이 지구를 완전히 새롭게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요한계시록 19장 7, 8절,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여기 이상한 비유가 나온다. 어린양의 아내라는 존재가 나타난다.

이 어린양의 아내는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21장 1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새 예루살렘 성,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성,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상징이다. 이 새 예루살렘 성에 관한 기록을 요한계시록 21장 9절에는 이렇게 말한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어린양의 아내는 새 예루살렘 성이다. 곧 우리 대한민국 그러면 서울이다. 그 남편은 예수님 즉 어린양이시고, 예수님이 자기 아내를 입히시고 보호하시고 데리고 오신다. 기쁨의 신부이다. 새 예루살렘 성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받으신다. 남편처럼 신부를 받듯이 받으신다.

예루살렘 성, 하나님의 나라의 신부가 입는 예복이 무엇인가? 요한계시록 19장 8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다. 우리말로 ‘옳은 행실’이라고 번역한 헬라어가 ‘디카이오마(δικαίωμα)’이다.

요한계시록 19장 8절에 나타난 이 똑같은 ‘디카이오마’가 지난 시간에 봤던 요한계시록 15장 4절“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와 같은 말이다. 주님께서 만드신 이것을 요한계시록 19장 8절에서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입혀주시는 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신 그 의의 열매, 디카이오마(δικαίωμα)는 주님께서 이루신 것인데, 마치 우리가 한 것처럼 우리의 디카이오마(δικαίωμα),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있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의의 본성, 새 영을 창조하셔서 우리 속에 넣어주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율법이 지켜지도록, 성령의 열매가 맺혀지도록 해서, 그것을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우리의 것으로 넘겨주신다고 말한다. 신랑 되신 예수님이 신부 예복을 직접 만들어서 신부에게 입혀주시는 것이다. 오직 은혜이다. 오직 은혜라는 것을 기억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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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이야기하는 많은 이들이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해주신 그 은혜, 그 의만을 자꾸 말한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의 자체가 바로 그리스도이다. 우리가 그 분을 우리 가슴에 모시는 것이다. 실제로는 그분의 영이다. 성령이 오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자신이 평생 사시면서 사랑을 완성하신 의를 우리에게 은혜로 입혀주신다.

세례(침례) 받을 때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 물속에서 나올 때 물을 입고 나온다. 그리스도로 옷 입고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의는 실제로는 우리 안에 주어진다고 말한다.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겠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이 우리 안에 심겨질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새 영속에 성령이 들어오셔서 율법이,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그것을 주님께서 다 이루시고, 주의 의로우신 일을 우리의 것이라고,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디카이오마(δικαίωμα)라고 우리에게 다시 넘겨주시는 것이다. 이것을 이름 하여 나누어 주시는 의라고 말한다.

그러나 전체적인 입장에서 요한계시록 19장 8절이 말씀하는 대로 성도들의 옳은 행실, 신부가 입는 옷,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나라 전체를 덮고 있는 입혀주시는 의이다. 전체적으로 통괄해서 전체적으로 말할 때는 입혀주시는 의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결론으로 다시 한 번 이야기한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회개 시키실 때 우리를 바벨론에서, 애굽에서 데리고 나오실 때 우리를 당신의 등에 업고 오시는 예수님(겔 36:24), 우리는 오직 그분의 용서의 어깨에 맡길 뿐이다. 그리고 데리고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영원한 저주를 받으시고 심판을 받으시고 우리를 용서하신 그 재가 되신 잿물로 우리를 씻으신다. 정결케 하신다(겔 36:25절). 그리고 우리 속에 새 영과 새 마음을 다시 창조하신다(겔 36:26). 진화가 아니다. 창조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시 성령을 부으셔서 옛날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그랬듯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을 기뻐하는 상태로 우리를 다시 만드신다(겔 3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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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2장 13절은 너무나 중요한 성경 말씀이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우리 속에 넣어주시고 우리로 즐겁게 그분의 뜻을 따라 행하게 하시는 것이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당신의 의를, 사랑을 이루시고 그것을 네 것이라고 우리에게 다시 넘겨주신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글씨를 잘 못 쓴다. 어렸을 적에 글씨가 아니고 그림을 그리다시피 한다. 그러면 엄마가 대신 써줄까? 하면 애들이 고개를 흔든다. 자기가 쓸 수 있다고, 그런데 정말 착한 아이들은 엄마에게 맡긴다. 그러면 엄마가 그 고사리 같은 아이의 손을 잡고 엄마가 글씨를 다 쓰고 엄마가 너무 기뻐서 야, 우리아기 글씨를 너무 잘 쓰네! 하고 엉덩이를 두드려준다. 실제로 누가 쓴 것인가? 엄마가 썼는데 아이가 자기 손을 엄마에게 맡겼을 때 엄마가 다 써주고 그것을 아이 것이라고 칭찬해 준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그렇게 사시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인간이 범죄 하기 전에도, 타락한 후에도, 우리가 하늘에 가서도 영원히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겨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매사에 하나님과 사랑으로 하나되라

잠언 3장 5, 6절,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말씀 하신다. 잠언 3장 6절에 분명히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고 말했는데 그 ‘인정하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다(ידה)’이다. 그것을 인격적 관계에서 쓸 때는 ‘동침한다’는 말이다. 매사에 모든 일에 하나님과 하나 되라, 사랑으로 하나 되라는 뜻이다.

마치 탕자가 집으로 돌아와서 그 뒤로부터는 모든 것을 아버지와 의논하고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겼다. 종은 아버지가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이 종이다. 그는 종으로 살았다. 정말 자원하는 종으로 아버지를 종처럼 섬겼다. 절대 자기 주장을 하지 않았다. 기쁨으로 아버지의 종처럼 살았다. 모든 것을 묻고 시키는 대로 살았다. 그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결론이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그의 의를 이루시는 것이다. 사랑을 이루시는 것이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놀라운 우리 아버지의 사랑의 이야기이다. 그 분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열매 맺히는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 이 놀라운 은혜에 끝까지 참여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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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요한계시록 19장 8절
  • 요한계시록 17장
  • 요한계시록 19장 6절
  • 요한계시록 19장 7,8절
  • 요한계시록 21장 11절
  • 요한계시록 21장 9절
  • 요한계시록 19장 8절
  • 요한계시록 19장 4절
  • 에스겔 36장 24,25,26,27절
  • 빌립보서 2장 13절
  • 잠언 3장 5,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