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의는 예수님이시다!

by blogstar posted Jan 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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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을 완전케하려 오신 주님

다시 한 번 고린도전서 1장 30절로 돌아간다. 그리스도 우리의 의! 어떻게 주님께서 우리의 의가 되시는가? 의는 예수님 자신이시다. 예수님은 복음이시다. 용서의 복음이시다. 사랑이시다. 동시에 그분은 율법이시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5장 17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율법을 완전케 하려 오셨다는 그 말씀은 설교를 통해서, 가르치심을 통해서 율법의 본래 의미를 드러내셨다. 완전하게 하셨다. 라는 말만이 아니다. 그 분의 삶과 죽으심을 통해서 그 분은 율법이 본래 말했던 그 본능적 사랑을 완성하신다. 그래서 그 분의 삶과 죽으심이 곧 율법이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주님께서 자기 삶과 특별히 죽으심을 통해서 보여주셨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셨던 기도,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자기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좇는다. 누가복음 23장 46절에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주님은 분명히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 아들까지 버리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이루어 드리는 것이었다. 그것이 율법이다.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던 사랑의 법이다. 계속 본능적 사랑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어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무엇도 막을 수 없고 방해할 수 없는 죽음을 넘어선 사랑이다.

그 누가 엄마의 사랑을 막을 수 있겠는가! 물에 빠진 아이를 자기가 들어가면 죽는 것이 보이는데도 물은 보이지 않고 아이만 보이기 때문에 그 물 속에 뛰어드는 엄마의 사랑을 무엇이 막을 수 있겠는가! 불타는 집에 홀로 있는 아이를 절대로 그냥 둘 수 없어서 자기는 불덩어리가 되면서도 아이를 끌고 나오는 엄마의 사랑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막을 수 없다. 율법이 그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본능적 사랑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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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법, 그것은 사랑의 법이다. 본능적인 사랑의 법이다.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죽음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 주님이 자기의 마음과 삶을 통해서 자기의 죽으심을 통해서 이루셨다. 율법을 완성하셨다. 무엇인가? 의이다. 의를 이루셨다. 몇 번이고 반복하고 또 반복해도 과하지 않다. 예수님은 복음이시지만 동시에 율법이시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그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이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의 죄를 자기 가슴에 본인이 묻고 죽는다. 그들에게 돌리지 않는다. 그 같은 정신으로 죽은 사람이 바로 스데반이다. 예수의 정신으로, 예수의 영으로, 성령으로 충만해서 죽은 사람이다. 그가 자기를 돌로 때려죽이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사도행전 7장 60절,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그 기도는 스데반의 기도가 아니다. 스데반 속에 계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이다. 성령이, 예수의 영이 충만했던 사람이다. 예수님은 바로 자기를 죽이는 자들의 죄를 당신이 짊어지고,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간구하시며 돌아가신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그 말은 분명하다. 그 사람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돈을 주고, 사는 아파트를 내어주고, 타고 다니는 차를 내어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영원한 생명, 자기가 얻은 구원을 그들을 위해서 내어주고, 자기는 그들이 죽어야 될 영원한 멸망과 지옥을 대신 당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일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 밖에 없다. 그것이 참으로 자동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주님께서 그 의를 이루셨다. 그래서 율법, 그것은 예수님의 삶과 그분의 죽으심이다. 그것을 다 완성하셔서 이제는 우리의 계좌에 넣어주신 것이다.

다시 한 번 로마서 4장 5절,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나는 이것을 신약의 복음의 헌장이라고 부른다. 불의한 자를,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로 여기신다. 이 의, 즉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고린도전서 1장 30절에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가 되신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우리의 의가 되셨다. 의라는 물건이 아니고 예수님 자신이, 그 분의 존재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이야기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 된다. ‘의’라는 것을 자꾸 물건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때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엄마만 있으면 다 끝나는 것이다. 엄마가 밥해주고, 청소해 주고, 빨래해 주고 엄마가 모든 것을 다 해 준다. 아이들에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단 한 마디로 ‘엄마’라고 대답한다. ‘의’라는 단어는 물건이 아니다. 존재이다.

헬라 철학을 했던 사람들이 성경을 공부하여 머리로 생각하는 소위 어떤 명제라고 부른다. 주제, 명제, 의, 사랑, 믿음 이런 이야기를 그저 그 단어 자체를 가지고 설명하는 그런 철학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이 의가 예수님이라고 말하면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의는 무엇이냐? 사랑을 완성한 것이다. 그것이 헬라적 해석이다. 철학적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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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히브리적 해석은 하나님이, 여호와가,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다! 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그분이 우리의 의가 되시는 것이다. 탕자가 집에 돌아 왔을 때에 아버지가 뛰어 나가서 그 아들을 끌어안고 입을 맞춘다. 어쩌면 돼지와 같은 아들을 다시 아들로 받아들인다. 그 아버지가 그 아들을 씻기고 새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긴다.

우리가 흔히 말한다. 그리스도 우리의 의, 아, 의라는 물건을 주시는구나! 아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철학적 사고로 말하는 말이다. 혹은 사법적으로 법을 따라서, 법은 문자적인 의미를 강조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 할 수 있다. 아버지가 아들이 잘못한 것을 와서 다 변상하고 아들을 찾아서 데리고 간다. 그것이 아버지가 주는 용서이다. 아버지가 주는 용서라는 물건은 아버지 자신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스도 여호와, 영원한 존재이신 그 분이 우리의 의가 되시는 것이다. 아버지가 탕자에게 의가 되신 것이다. 그래서 그 아들을 깨끗하게 목욕시킨다. 죄를 용서한다. 그 다음에 자기의 가장 좋은 옷을 아들에게 입힌다. 의를 입혀 주시는 것이다. 곧 그 아들에게 자기의 가장 좋은 옷을 입혔다는 말은 아버지가 되게 해 주었다는 말이다. 아버지가 산 인생이 바로 아들의 인생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옷을 입었다. 곧 아버지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 우리의 의! 우리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씻기실 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을 주신 것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로마서 13장 14절,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으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을 바울은 또 다른 비유 속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세례(침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말하고 있다(갈 3:27).

골로새서 3장 9, 10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새사람이 누구인가? 예수님이시다. 세례(침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 올 때에 우리는 물로 적셔진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중요한 상징이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2장 12, 13절에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옷 입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다는 표현이다.

키워드 : 의, 에수님, 겟세마네, 본능적사랑, 스데반, 로마서, 고린도전서, 탕자, 옷, 갈라디아서, 골로새서

성경구절

  • 고린도전서 1장 30절
  • 마태복음 5장 17절
  • 누가복음 23장 46절
  • 사도행전 7장 60절
  • 로마서 4장 5절
  • 고린도전서 1장 30절
  • 로마서 13장 14절
  • 갈라디아서 3장 27절
  • 골로새서 3장 9,10절
  • 골로새서 2장 12,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