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하나 되신 하나님

by blogstar posted Jan 03,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5-11.jpg

하나님의 영

성경은 ‘영’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이제 거룩이란 단어에서 ‘영’이라는 단어로 가본다. 구약의 히브리어로 일반적으로 ‘루아흐’라는 단어이다. 이 본래 뜻은 ‘바람’이다. 혹은 ‘숨’이다. 신약성경에 ‘영’이란 단어는 ‘푸뉴마’ 역시 같은 뜻이다. ‘바람’ ‘숨’이다. 성경에서 사용된 용례를 보면, 여러 가지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이 단어들이 사용되었다.

첫째로, 하나님의 존재 방법이다. 하나님은 바람이시다, 숨이시다. 하나님의 존재 방법을 표현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은 불이시다. 하나님은 물이시다. 그런 등등의 표현들이 있다. 그런데 특별히 바람이다 숨이다 는 표현은 상당히 깊은 의미가 있다. 창세기 2장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사람을 ‘숨 쉬는 존재’로 창조했다라고 성경은 기록한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숨 쉬는 존재가 되었다” 살아서 숨 쉬는 존재가 되었다, 그것이 본래 히브리말이다. 한글 개역성경에는 ‘생기’라고 이 말을 번역했는데 이스라엘 말, 히브리말을 그대로 읽으면 ‘생명들의 숨’이다. ‘하임’이라는 명사를 썼다. ‘하이’는 ‘생명’이라는 말의 복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복수의 개념이 양도 많다, 숫자도 많다, 그 다음에 ‘중요하다는 개념’도 있다. 그럴 때는 복수를 쓴다. 여기 ‘풍성한 생명’ 그렇게 번역하는 것이 오히려 좋겠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 10절“내가 온 것은 너희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때 그 ‘풍성한 생명’이라고 하면 이 말이 좀 더 어울릴 것 같다. 생명들, 생명들이라고해서 생명이 여러 개 있다, 그렇게 표현하는 수적 개념이 아니고 아주 풍성한 개념, 양의 개념으로 쓰였다.

이 생명들에게 숨을 불어 넣었을 때, 우리 한글 개역성경은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 이 ‘생령’이라는 번역은 영어 킹 제임스 성경을 따른 것이다. ‘living soul’이라고 번역했다, ‘soul’은 ‘영혼’이다. 영혼이라는 존재는 육체가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아담은 이미 육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영혼인가? 어떤 영적인 존재라는 말로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엄연하게 문자적인 번역으로 하면 틀린 번역이다. ‘영혼’ ‘소울(soul)’은 아니다. 예수님도 영은 살과 피가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 말의 히브리말은 ‘하야 네페쉬’라는 단어인데 여기 ‘생’ ‘하야’ ‘네페쉬’, ‘하야’는 ‘살아있다’는 뜻이고 ‘네페쉬’는 ‘숨 쉬는 존재’라는 뜻이다. 이 단어 ‘네페쉬’는 ‘숨 쉬다’는 ‘나파쉬’라는 동사의 명사형이다. 이것은 ‘숨 쉰다’는 뜻이다. 정확하게 직역하면 ‘살아있는 숨 쉬는 존재’ ‘하야 네페쉬’이다.

흥미로운 단어가 또 있다. 그것은 똑같은 ‘네페쉬’ ‘숨 쉬는 존재’이다. 살아있지 않고 죽어서 숨 쉬는 존재, 숨 쉬는 존재인데 죽어있는 숨 쉬는 존재이다. 이 말과 반대되는 말이 하나 나온다. 민수기 6장 6절에 보면 우리말 번역은 시체라고 번역했는데 이 ‘시’자는 죽었다는 ‘시’자이다. ‘무트’라는 히브리말이다. 이것은 ‘죽었다’는 뜻이다. 죽었다. ‘체’ ‘네페쉬’이다. 숨 쉬는 존재가 죽었다, 숨을 안 쉰다는 그런 뜻이다. ‘하야 네페쉬’와 반대되는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하야 네페쉬’라는 ‘생령’이라고 번역된 이 단어가 창세기 1장 20절, 21절, 24절 등에 나와 있다. 창세기 1장 20절과 21절에 보면 물속에서 숨 쉬는 생물을 ‘하야 네페쉬’라고 했다. 여기서는 우리 번역이 ‘생물’로 번역하고 있다. 그 다음에 24절에 보면 땅 위에서 공기를 숨 쉬는 똑같은 생물이다. 동물과 곤충들이다. 그러니까 이 ‘하야 네페쉬’라는 단어는 근본적으로 ‘살아서 숨 쉬는 존재’라는 뜻이지 ‘영혼’이라는 개념은 없다. 사람들이 이 영혼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이 말 속에 집어 넣음으로 혼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또 다른 ‘네페쉬(nephesh נֶפֶשׁ)’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면 이 네페쉬, 숨 쉬는 존재가 죄를 지으면 죽는다고 말하고 있다. 에스겔 18장 4절, 범죄 하는 네페쉬, 영혼이라고 우리말로 번역했는데 잘 번역된 단어가 아니다. 영혼은 분명히 육체가 없는 존재이다. “범죄 하는 영혼이 죽으리라” 여기서 ‘영혼’은 분명히 ‘네페쉬’이다. 죄를 짓는 숨 쉬는 존재는 반드시 죽으리라, 죽는다.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말에 전혀 반대되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한 이 ‘네페쉬(nephesh נֶפֶשׁ)’는 ‘숨쉬는 존재’를 가리킨다. 흥미로운 것은 이 ‘네페쉬’란 단어가 다른 번역에 보면 ‘목’을 가리킨다. 목, ‘네페쉬’ ‘목’이다. 여기에 숨을 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죽인다는 말 가운데 하나가 목을 자른다, 히브리어로 ‘카라트’ ‘자른다’는 뜻이다. 카라트 네페쉬, 목을 자른다. 왜 제가 이 말씀을 길게 드리는가 하면 사람이 창조될 때에 생령, 살아서 숨 쉬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며칠 동안 밥을 먹지 않고, 물을 안 마셔도 대충 살 수 있지만 숨은 10분만 안 쉬어도 죽는 것이다. 끊임없이 숨을 쉬고 사는 존재이다. 숨을 쉬지 않는 사람을 죽었다고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숨, 생명이시다

5-22.jpg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루아흐’ ‘숨’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바람’이다. ‘숨’이다. 여러분, 이 말씀의 의미가 좀 더 새롭지 않은가? “나는 숨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너는 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생명의 의미 중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이시다. 그분 없이 우리가 살 수 없다. 그것을 육체적으로 표현하면 그분은 우리의 숨이시다. 생명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존재를 밖으로 우리에게 표현하실 때 숨이다, 바람이다. 실제로 하나님이 바람이 아니시다. 바람은 물질이다. 산소 수소 질소 탄소 그것은 물질이지 하나님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그렇게 표현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와의 생명의 뗄 수 없는 관계, 너는 나 없이 살 수 없다. 반대로 나도 너 없이 살 수 없다. 그것은 우리 어머니가,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하셨던 이야기들이다. 내 어머니도 살아생전에 나와 같이 예배드리신 다음에 나를 보시고 가끔 몇 번 내 귀에 말씀하셨다. 너는 내 목숨이다! 그것은 분명하다. 엄마가 숨이 끊어지면 뱃속에 있는 아이도 죽는다. 또 그 아이가 죽으면 엄마는 죽은 목숨과 같다. 하나 된, 일체된 생명이란 뜻이다. 그래서 이 하나라는 말은 성경에 아주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사랑의 하나 됨, 생명의 하나 됨.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서로에게 자기들을 주셔서 마치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자기를 주어서 하나 되었을 때에 아들이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하나님 예수님에게, 아들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에게, 아버지 하나님은 성령하나님에게, 성령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에게, 예수님은 성령 하나님에게,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서로에게 자기를 주셔서 완전히 한 덩어리가 된 그 열매가 바로 아담이라고 말하고 있다.

창세기 1장 26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가 사람 하나를 만들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하나님이 서로 사랑으로 하나 되어서, 남편이 아내에게 자기를 주어서 아들을 낳듯이 아들이 그 두 사람의 사랑의 하나 됨의 열매인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 세분의 사랑의 하나 됨의 열매인 것이다. 그것이 원래 창조된 아담의 모습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 넣으셔서 우리와 당신의 생명이 하나 되심을, 사랑의 하나 되심을 나타내신 말씀이다.

성경구절

  • 창세기 2장 7절
  • 요한복음 10장 10절
  • 민수기 6장 6절
  • 창세기 1장 20,21,24절
  • 에스겔 18장 4절
  • 요한복음 14장 6절
  • 창세기 1장 2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