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종류
에베소서 2장 8절의 구원의 공식을 다시 한 번 확인 하면,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하나님 편에서는 은혜이고 우리 편에서는 믿음이다. 물론 이 믿음 자체도 은혜에 의해서 주어진 믿음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누구를 선택하고 누구에게 맡기느냐에 따라서 구원이나 멸망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수님에게 맡기면 구원이지만 마귀에게 맡기면 멸망이다.
이 시간에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구원의 조건인 이 믿음이 종류가 크게 나누어서 2가지라는 것이다. 지난번에 공부했듯이 첫째는 병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그 병을 주님께 맡기는 믿음이 있다. 두 번째는 죄로부터의 구원이다. 죄로부터 구원하실 때 역시 자신의 죄를 믿음으로 맡기는 역사가 일어난다.
죄로부터 구원 얻는 믿음, 이 믿음이 신약 성경에 구원에 관한 말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신다는 말씀에 2번이 나온다. 예수님의 일생동안에 이루어진 사건들 속에 2번 기록이 되어 있는데 첫째는 누가복음 7장 50절의 말씀이다. 창녀, 아마도 마리아라고 생각이 든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보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구원에 대한 분명한 언급을 하신다. ‘네가 이미 구원 받았다!’
구원에 3단계가 있다고 말씀 드렸다. 죄의 결과로부터의 구원, 또 하나는 죄의 영향력으로부터의 구원, 마지막으로 죄의 존재로부터의 구원. 근본적으로 죄의 결과로부터 구원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구원 받았다고 말씀하신 두 번의 경우 중에 하나가 누가복음 7장 50절의 말씀이다. 이 여인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누가복음 7장 36절부터의 기록 가운데 나타나 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 초대를 받았다. 아마도 이 사람은 다른 마태, 마가, 요한 등에 나타난 복음을 합해서 보면 이 사람이 창녀 마리아의 가족 되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은 시몬이라는 사람이다.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이름을 직접 언급을 하셨다. 시몬아, 라고 말씀을 하신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우리가 대충은 짐작할 수 있지만 이 시몬이 예수님을 초청해서 식사를 대접하는 그 와중에 이 여자가 예수님 발밑으로 와서 한없이 울고 자기 머리털로 수건을 대신해서 예수님의 발을 닦고 거기에다 향유를 붓는다. 이 사건에 대해서 예수님이 다른 제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 하신다.
그 공개적인 이야기가 어떤 주인이 500데나리온 빚진 사람과 50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다 탕감을 해주었다. 용서를 해주었다. 그 탕감 받은 사람들이 이 주인을 감사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시몬에게 질문을 하신다. 두 사람, 50데나리온 그리고 500데나리온 빚진 사람 중에서 누가 더 주인을 감사하게 생각하겠느냐?
그러니까 시몬이 아주 정확하게 대답을 한다. 43절에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을 받은 자가 더 사랑할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시몬의 대답에 맞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여자의 행동을 칭찬하신다. 시몬, 너는 내가 집에 들어올 때에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고 또 땀 냄새 나는데 올리브유 하나 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 여인은 눈물로 내 발을 씻고 그 위에 향유를 부었다. 자, 누가 더 나를 사랑하느냐?
그때 예수님이 대답을 겸해서 하신다. 그것이 47절 말씀이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상대적인 표현을 하셨다. 다른 말로 ‘많이 용서받은 자는 나를 많이 사랑한다.’ 여기에 ‘많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이 많다는 일반적인 의미도 포함되지만 모두 용서 받은 자, 그렇게도 히브리 사람들은 많다는 말을 ‘모두’라는 말로도 쓴다. 실제로 로마서에 보면 ‘많다’는 말과 ‘모두’라는 말이 같이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이 여인은 자기의 죄 많은, 한 많은 인생을 다 예수님께 맡겼고 다 용서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 시몬은 다른 복음서의 기록을 보면 나환자였다. 나병이 나았다. 주님께서 그를 용서하시고 나병을 치료해 주셨다. 그래서 그는 소위 적게 용서받은 자가 되었다. 많이 가 아니다, 적게다. 그래서 네가 나를 적게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말씀하셨다.
용서받은 만큼 예수님을 사랑한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여인에게 대하여 다시 한 번 말씀하시기를 48절,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께서 용서하신 사실을 확실히 다시 한 번 못을 박는다.
예수님의 삶에서 많은 경우에 병자들을 고친 이야기가 나온다. 어쩌면 죄를 용서해 준 기록보다는 병 고친 기록이 훨씬 많다. 그때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똑같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그런데 이렇게 죄를 용서하시는 경우에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누가복음 7장 50절,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이때는 죄가 분명하다. 이 사람이 병이 나서 예수님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예수님 말씀대로 이 여인은 죄 사함을, 죄 용서를 받기 위해서 예수님 앞에 온 것이다. 그리고 이미 용서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많이, 모든 죄를 다 용서받은 사람은 모든 것을 다해서 나를 사랑한다. 이것이 죄로부터 구원받는 방법이다. 똑같다. 다시 말하면 죄를 맡기는 것이다. 죄를 맡기는 것! 병이 아니고 죄이다. 병을 나았으면 그저 몇 십 년 더 산다. 그러나 죄를 용서받을 때는 영원히 산다. 영생이 있다. 수 십 년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이다.
예수님이 실제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자기 목숨을 주러 오셨다. 마태복음 20장 28절, 인자가 온 것은, 내가 왜 이 땅에 사람으로 왔는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이 창녀를 만나시고 가슴 아픈 그의 일생을 용서하신 것이다. 아마도 이 사람이 고향집으로 돌아왔다고 본다. 그런데 바로 옆의 집, 삼촌네서 잔치를 벌여 예수님을 만날 기회가 되었고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여기서 구원은, 믿음으로 구원 얻는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셨을 때와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똑같은 말씀이 누가복음 19장에 나온다. 누가복음 9장에 보면 삭개오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잘 아는 사람 삭개오가 돈의 노예가 되었었다. 죄의 노예, 욕심의 노예가 되었는데 예수님이 그 집을 찾아오셔서 그를 용서하시고 사람을 만들어 주셨다. 그가 모든 돈을 다 내놓고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 반으로 지금까지 자기가 토색한 것을 다 4배씩 갚겠다고 한 것이다.
누가복음 19장 8절이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이스라엘 풍습은 옆으로 누워서 식사를 한다. 이 사람은 섰다. 종이다, 봉사하는 종이다. 서서 말하기를 내가 재산의 절반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나머지 절반으로는 지금까지 토색한 것 4배씩 갚겠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19장 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분명히 죄로부터, 욕심으로부터의 구원이다.
누가복음 19장 9절은 누가복음 7장 50절과 더불어서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을 주님께서 명백히 하신 말씀이다. 죄로부터의 구원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다. 자기 목숨을 우리를 위해 대속 물로 주신 목적이다.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구원이 병으로부터의 구원도 구원이지만 더 중요한 구원이다.
똑같이 병든 몸을 맡기듯이 병든 마음을 맡기는 믿음, 병든 마음, 죄 많은 마음을 맡기는 이 믿음에 우리가 다 함께 구원에 동참하시게 되기를 바란다.
성경구절
- 에베소서 2장 8절
- 누가복음 7장 50절
- 누가복음 7장 50절
- 누가복음 7장 36절
- 누가복음 7장 43절
- 누가복음 7장 47절로 48절
- 누가복음 7장 50절
- 마태복음 20장 28절
- 누가복음 19장
- 누가복음 9장
- 누가복음 19장 8절로 9절
- 누가복음 7장 5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