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참된 믿음
참된 믿음, 마지막 참된 믿음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누려고 한다. 누가복음 18장 28절부터의 말씀,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지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어차피 예수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나를 주님께 맡기는 믿음이다. 이 믿음이 내 병도 내 죄도 다 주님께서 치료하시고 구원하시는 믿음이다. 어차피 나라는 존재는 예수님에게 들어가서 자신을 맡기는 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참 믿음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얽혀있는 죄들을 끊어버리지 못하고 자신들을 맡기지 못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1절에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가슴 속에 우리 자신을, 우리 죄 된 인생을 맡기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예수님께서 열거하셨다.
어떤 부자 법관이 예수님에게 와서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네 소유, 네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네가 빈 몸으로, 어디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으로 네가 나에게 맡기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한다.
정말로 수많은 것들이 우리를 얽매고 우리 주님께로 가서 우리 자신을 맡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버리는 이야기가 불가피하게 나올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돈에 묶여 있는 사람들, 여기 주님께서 누가복음 18장 29절의 말씀하신대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이것은 엄청난 이야기이다. 어떻게 아내를 버리는가? 어떻게 남편을 버리는가? 어떻게 형제나 부모를 버리고 가장 어려운 자식을 버리는가? 이 말을 잘못 오해하는 분들이 있다. 아니다, 예수님에게 자신을 맡기는 믿음이 있어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무조건 버리라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우리가 사랑해야 되고, 돌봐야 될 대상이다. 하지만 믿음에 관한 한, 주님께 내 자신을 맡기는 일에 관한 한 우리는 반드시 우리를 얽어매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신을 구별해서 그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고 우리 주님께 자신을 맡기는 연습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도 처음에 예수님을 믿을 때, 나의 아버님이 나에게 “네가 이 세상에 나올 때 내 속에서 안 나오고 어디서 나왔느냐? 어떻게 네가 부모를 버릴 수 있느냐?” 나는 결코 부모를 버릴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가 볼 때는 내가 예수를 믿으면 제사를 안 드리고 아버지 사후에 영혼이 있어서 밥을 어디 가서 얻어먹을 것이냐? 네가 자식으로서 부모를 버리는 것이 아니냐?고 추궁할 때, 내가 추도예배 드립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믿지 않는다.
본인은 당신이 예수님을 안 믿는 분으로서, 영혼이 있다고 믿으셔서 밥을 얻어먹어야 되는데 네가 부모를 버리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 믿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내가 여러 번 설명을 드려도 쉽게 납득이 안 되셨다. 결국은 본인이 신앙을 하시고 나서 그것을 이해하게 되셨다. 내가 부모를 공경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안 믿는 부모님이지만 우리가 모시고 살았다. 다 그렇게 해야 주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라 하셨으니까.
왜냐하면 주님께서 당신의 목숨을, 피를, 물을 다 쏟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죽어야 될 죽음을 대신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 사랑을, 그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본인이 그렇게 확고하게 주님께 믿음으로 맡기면 부모도 형제도 따라온다. 자식도 따라 온다. 무언가 있다 해서 따라온다.
믿음의 성격
우리가 오늘 참 믿음의 성격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살펴보려고 하는데 그것은 다시 말씀 드리지만 주님께로 가서 우리 자신을 맡기는 모든 얽매이기 쉬운 것들을 끊어버리는 것, 아니면 우리는 그것들에게 얽매여서 절대로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릴 수 없다는 것이다.
돈을 버리고 세상을 버리는 것은, 죄를 버리는 것은 믿음 때문이다. 이것을 다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은 ‘나’라는 죄 덩어리를 주님께 맡기기 위해서는 절대로 이것들과의 관계를 끊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 이사야 44장 22절에 분명히
하지만 돌아가는 데는 반드시 나의 입장에서는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이사야 55장 7절, 네 죄를 버리고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내가 널리 용서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미 용서하셨다는 말씀과 함께 용서하시리라고 말씀하신다. 이미 용서하신 용서가 본인의 것이 되려면 반드시 죄를 버리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용서를 받고 은혜를 받으려면 본인의 손에 들었던 죄를 내려놓아야 하나님이 주시는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믿음에, 구원을 얻는 절대적 조건 중에 하나가 죄를 버리는 것이다. 죄를 버리지 않는 이상 하나님이 주시는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이 버림 자체도 하나님의 사랑이, 은혜가 만든 열매이다. 이 버리는 일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날씨가 뜨거워지면 두꺼운 잠바는 자동으로 벗는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로 하여금 죄를 버리게 만들어 준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뜨거운 사랑이 사람의 영혼에 와서 감동될 때, 이 뜨거운 사랑의 열기가 죄인에게 비칠 때 죄인은 죄를 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단 조건은 세상을 바라보던 우리가 돌아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조건 하에서만 가능하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죄를 누가 버리는가? 어떻게 버리는가? 버릴 수가 없다. 죄가 너무나 좋은 것이다. 그것과 같이 즐기고 같이 살고 싶은 것이다. 어떻게 죄를 버리겠는가? 그러나 십자가의 뜨거운 사랑의 빛이 우리에게 비칠 때에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녹아지고 그 사랑에 자신을 굴복하고 모든 것을 버리게 되는 은혜를 입게 된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는 목적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이 믿음을 받기 위해서이다. 이 은혜를 받기 위해서이다. 바가지를 엎어놓으면 절대로 물이 고이지 않는다. 그것을 뒤집어서 물이 고일 수 있도록 놓지 않는 이상 절대로 받을 수 없다. 그 선택은, 그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하심과 인도하심 아래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 자신을 열 때 하늘의 빛이, 십자가의 빛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서 우리는 스스로 할 수 없었던 죄를 버리게 되는 일을 하나님의 은혜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믿음, 이 믿음 자체도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라는 사실이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잃어버린 양의 비유에서도 주님은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잃은 양의 비유 가운데 목자가 양을 찾으러 가서 양을 찾아 본인이 어깨에 메고 온다. 목자가 양 앞에 앉아서 어깨를 내밀고 양에게 ‘내 등 뒤로 올라와라 그러면 내가 업어주겠다’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는가? 목자가 직접 양의 앞다리 뒷다리를 잡아서 목자가 자기 어깨에다가 자기가 메는 것이다. 업히는 일이 아니고 주님이 업어주시는 일이다. 주님께서 그 양의 앞다리 뒷다리를 잡고 어깨에다 메고 집으로 돌아갔다. 맡기는 것, 업히는 일, 이것은 내가 스스로 예수님 등에 올라가서 업히는 게 아니고 주님이 내 다리를 잡아서 주님이 업어주실 때 업혀지는 것이다. 믿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할 사항은 그 양이 염치를 차리고 나는 여기서 죽겠습니다. 나는 죽어도 싼 놈입니다 하고 업히는 일을 거절했다면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완성 시키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이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란다.
성경구절
- 누가복음 18장 28절
- 히브리서 12장 1절
- 누가복음 18장 29절
- 이사야 44장 22절
- 이사야 55장 7절
- 에베소서 2장 8절
- 누가복음 15
- 히브리서 12장 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