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성경은 분명히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믿음은 선물이다’는 것이다.
첫째로, 유다서 1장 3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여기에서 “단번에 주신 믿음”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인데, 우리말 번역은 “믿음의 도”에서 ‘의’와 ‘도’라는 말이 붙어있다. 그런데 본래 성경원어에는 이 말이 없다. 그냥 믿음이다. 단번에 주신 믿음! 분명히 성경은 “믿음을 주시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신약성경에만 적어도 세 번 나온다. 은사의 표현을 빌리면 무려 네 번까지 신약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나온다.
베드로후서 1장 1절 말씀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여기에 보면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받은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받은 믿음!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가? 오래 전에 내가 일본을 방문한 일이 있다. 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나를 환대해 주셨던 동경 한인 교회 목사님이 아침에 신문을 펼쳐 보이시는 것이다. 내가 일본말을 인사 정도 밖에는 못한다. 무슨 사건이냐고 물었더니 사람들이 은행에서 부도나기 직전에 은행에서 돈을 빼서 전부 우체국으로 가서 그 예금을 다시 넣는다는 것이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그 때 당시 20여년 전이다. 일본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사람들이 잘 소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분들이 절약하는 정신을 우리가 본 받아야 된다. 그런데 그렇게 절약하는 것은 좋은데 너무 지나치게 절약을 하면 사람들이 돈을 안 쓰기 때문에 물건을 만드는 공장들이 다 쉬어야 된다.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한국 사람들은 빚이 있어도 잘 쓴다. 어떻게 보면 빚 많은 분이 돈을 제일 잘 쓴다. 그 때 당시 한국 경제 규모가 일본의 십분의 일 밖에는 안 되었다고 한다.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훨씬 돈 많은 일본 사람은 돈을 안 쓴다. 오히려 부동산이나 아파트 이런 곳에 투자해서 돈이 오르기를 바랐는데 그것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 경제가 너무 어려웠다고 한다.
일본의 은행들이 최근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일본도 미국 비슷하게 돈을 맡기면 이자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관 세를 내야 된다고 한다. 소위 마이너스 금리라고 한다. 일본 은행들이 돈 장사를 못하니까 부도가 나는 은행들이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그 은행에서 돈을 찾아 부도가 나지 않는 우체국에 맡긴다. 부도나지 않는 은행이 일본에서는 우체국이라고 한다. 우체국은 국가가 운영하는 금융 단체이므로 국가가 부도가 나지 않는 이상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은행이 소비자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니까 소비자들이 그 은행에서 돈을 빼서 믿음을 주는 우체국에 갖다 예금을 하는 것이다.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와서 적은 돈이지만 몇 십 만원이라도 빼서 우체국 통장을 만들어서 거기다 넣었다. 그랬더니 우체국 통장에 찍혀져 나오는 것이다. 요즘도 가끔 찍어 나온다. ‘우체국은 국가가 운영하는 금융기관이므로 절대로 부도날 일이 없습니다. 부도가 나면 국가가 책임집니다.’라고 통장에 쓰여 있다. 우체국이 나에게 믿음을 주니까 내가 돈을 갖다가 우체국에 맡긴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도행전 17장 31절 말씀에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기 때문에” 그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게 된다는 것이다. 곧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믿음을 안 주셨으면 우리가 하나님께 자신을 맡길 수 없는 것이다.
아이들이 왜 학교에 갔다가 오면 엄마에게 가방을 툭 던지고 놀러 나가는가? 엄마가 자기를 어떻게 사랑한다는 것을, 엄마의 사랑이 그에게 어떤 존재라는 것을, 어떻게 엄마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엄마의 사랑에 모든 것을 툭 던지고 맡기고 나가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이 믿음은 사랑이 만드는 열매라고 말하고 있다. 그 유명한 말씀, 갈라디아서 5장 6절에 보면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여기 ‘역사한다’는 헬라어 동사는 ‘에네르게오’이다. 이 ‘에네르게오’라는 단어는 에너지를 만든다는 뜻이다. 헬라어에서 ‘에네르기아’라는 명사가 영어로 와서 ‘에너지’가 된다. 에너지, ‘힘을 만들어 낸다’는 그런 뜻이다. 사랑이 믿음을 창조한다.
그런데 이 사랑이 어느 회사에서 나온 사랑이냐? 어느 회사에서 나온 기름이냐? 쌍용 기름인지, SK 기름인지 그 공장이 나와 있다. 그것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다. 거기에 ‘사랑’과 ‘믿음’이라는 두 단어가 같이 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여기를 주목하시기 바란다. “나를 사랑하사” ‘사랑’이라는 단어가 분명히 나온다. ‘아가파오’라는 동사이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나님께 사랑을 받아 나누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이,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그분의 가슴 속에 있는 사랑이 내게 들어 와서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랑의 믿음을 예수님이 우리에게 불어 넣으실 때에 우리 속에 있는 믿음이라는 자동차가 움직이면서 그 속에 다시 한 번 그 사랑의 가슴 속에 자신을 맡기는 믿음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가정의 모든 문제는 남자에게 있다. 남자는 하나님 아버지께 사랑을 받아야 된다. 그 사랑을 자기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주어야 된다. 그것이 질서이다. 집에 생기는 모든 문제는 아이들에게서 생긴 문제도 아니고 사랑하는 아내에게서 생긴 문제도 아니다. 남편에게서 생긴 문제이다. 남편이 하나님의 사랑을 순서대로 받아서 주어야 된다.
여자가 먼저 받아야 된다면 성경에 그렇게 쓰여 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니다. 분명히 남자는 여자의 머리이다. 순서가 그렇다. 높아서 머리가 아니다. 받아서 전달하는 매체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남편이 사랑을 못주면 아내라도 어쩔 수 없다. 가서 하나님 사랑을 받아다가 믿지 않는 남편을 사랑하라,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 요즘 세상은 사랑이 없다. 남자라는 존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가족들에게 전해 주어야 됨에도 불구하고 돈과 세상에, 일에 파묻혀 살면서 그 사랑을 받지 못하고, 받아서 주지 못하므로 사랑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죄이다.
성경구절
- 유다서 1장 3절
- 베드로후서 1장 1절
- 사도행전 17장 31절
- 갈라디아서 5장 6절
- 갈라디아서 2장 20절
- 디모데후서 3장 1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