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참된 거듭남

by blogmaster posted Jan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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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예수님

십자가의 사랑! 우리가 영원히 연구해도 다 알 수 없는 사랑이다. 이 사랑이 구약에 많은 모형들 가운데 나타났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영생을 찾지만 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 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영생이라는 물건을 찾는다. 이것은 물건이다. 왜 물건을 찾는가? 욕심 때문이다.

왜 교회 다니는가? 왜 기독교 신앙을 하는가? 라고 물어보면 다 똑같다. 구원 얻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것은 자기 사랑이다. 자기 욕심이다.

 

물론 기독교 신앙을 하는 첫 단계에 있어서는 우리가 어리석어서 일단은 죄로부터 벗어나서 내가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을 얻고 싶은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영생은 바로 나다, 내가 영생이다 고 말씀하신다. 영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이것은 분명히 물건이 아니다, 존재다. 나라는 존재다. 어떤 존재인가? 전혀 성격이 다른 존재이다. 이 존재는 자기를 다 주시는 사랑이다. 자기를 다 희생하시는 사랑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사랑이 아니고 하나님과 다른 존재들에 대한 소위 타 존재에 대한 사랑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이유요 그분의 본질이다. “내게 대하여 증거 한다.” 

이 세상에 나서 편안한 집에서 대접받고 인정받고 구십 세, 백 세 되도록 산다고 하면 사람들이 참 훌륭한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여러분도 다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 그런데 예수님은 사십도 못 되어서 33세로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처참하게 죽었다. 학살을 당했다. 그리고 편안하게 사셨는가? 그렇지 않다. 가난한 집의 목수의 아들로서 좀 지나치게 말하자면 지긋지긋하게 가난하게 사셨다.

그가 누우실 자리가 없어서 말이 밥 먹는 말 밥통에 누우셨고 마지막 누우셨던 무덤도 결국 남의 무덤에 빌려 누우셨다. 기독교는 희생의 종교이다. 사랑의 종교라는 말은 그럴듯한 말이지만 그 본질을 다 얘기 못한 것이다. 사랑이 무엇인가? 자기를 다 주어서 끝내는 자기 목숨까지 바쳐서 처참한 죽임을 당하신 사랑이다. 그 본질을 보면 바로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곧 자기를 주신 종교이다. 자기희생의 종교이다.

요한복음 14장 9절에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고 있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셨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면 어떤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까? 그 모습은 예수님과 똑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모습이었다. 우리를 창조하신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다.

자식을 위해서 돌아가시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영원히 자기를 버리신 희생의 사랑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찾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는 내 욕심으로, 영원히 살고 싶은 욕심으로 영생이라는 물건을 찾는 것이다. 영원히 가치 있는,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영원한 가치는 자기를 버리신 자기희생의 사랑이다. 그것만이 온 우주에 영원히 계속 될 것이다. 그것이 이 우주를 움직이는 영원한 우주의 생명의 법칙이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살고자 하는 욕심이 있는 자는 죽을 것이다. 이 사랑으로 충만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세상은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의 법칙이 움직이는 세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자기욕심이라는 안경을 쓰고 예수님을 쳐다보고 있다. 그래서 자기희생이라는 말이 도대체가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예수 믿고 복 받아 잘 먹고 잘 산다. 자식들까지 다 잘된다.

사도행전을 통해 본 예수님 제자들의 일생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의 일생을 본다.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자기 있는 재산을 다 팔아서 교회에 갖다 주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밥을 나누어 먹기 위해, 그들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바로 초대교회는 성령이 충만했던 교회요 그것은 하늘이었다. 노후대책을 세우기 위해 잠깐 땅 판 것의 일부를 숨겨 놨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하늘에서는 욕심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래서 그들은 죽었다. 이 세상에서 아무도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는 그 세상이 어서 한 번 더 왔으면 좋겠다. 초대교회의 모습이 다시 한 번 우리 교회 안에 존재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옛 선조들이 그렇게 살았고 지금도 가난한 나라에 가 보면 정말 가족들끼리 그렇게 콩 한 조각도 나눠 먹고 사는 동네가 꽤 많이 있다. 가난하기 때문에 사랑이 있다. 그런데 점점 돈이 생기고 자기 집이 생기고 세상이 편리하고 좋은 것들이 생기면 전부 남남이 되는 것이다.

옛날에 그 헌 이불 속에 첫째부터 막내까지 다 발을 집어넣고 자던 그런 아름다운 그런 날은 우리에게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슬픈 이야기이다. 예수를 믿지 않았을 때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서로 사랑하고 살았던 때의 이야기는 오늘날 예수 믿는 우리들이 자기 것밖에 챙길 줄 모르는, 자기 구원만을 챙기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얼마나 기가 막힌 이야기인지!!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질 때 하나님의 성령이 부어질 때 우리는 모두 다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놀라운 사랑의 소식을 이 용서의 소식을 이 생명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아낌없이 드릴 것이다. 우리 목숨까지도 드릴 것이다. 이것이 거듭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열매이다.

 

기독교가 무엇인가?

기독교가 무엇인가? 기독교는 이론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다. 멋들어진 설교도 아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이 기독교다. 예수님이 아니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예수님과 같은 삶, 예수님과 같은 사랑, 예수님과 같은 희생, 예수님과 같은 봉사와 헌신이 아니면 기독교가 아니다. 그것은 거짓 기독교이다. 거짓된 신앙이요 거짓된 거듭남이다. 그런 이들이 어떻게 거듭남을 얘기 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네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 우리는 이 거듭남에 대해서 자기대로의 수많은 해석을 한다. 결코 아니다. 예수님 말씀 그대로이다. 마태복음 7장 15, 16절의 말씀대로 거짓 선지자들을 우리는 그들의 열매로 알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거듭난 사람들의 삶에 열리는 열매가 아니라면 그것은 거짓 선지자이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 22, 23절“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종교적 행위,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암환자를 고치고 설교를 하고 봉사를 하고 희생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시는 것이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시는 것이다. 무슨 불법인가?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나타난 사랑의 법, 본능적인 사랑의 법, 그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자들이다.

그것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거듭난 본성에서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로마서 8장 4절“성령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의가 이루어지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닌 것이다. 거듭난 사람 속에서 성령이 역사하신 사랑의 열매들이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다.

키워드 : 거듭남, 사랑, 영생, 욕심, 죄, 존재, 십자가, 아버지, 예수, 선지자, 성령

성경구절

  • 요한복음 5장 39절
  • 요한복음 14장 9절
  • 마태복음 7장 15절로 16절
  • 마태복음 7장 22절로 23절
  • 마태복음 5장부터 7장
  • 로마서 8장 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