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영존하신 아버지

by blogmaster posted Jan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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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대신하여 죄가 되셨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그리스도를 죄로 삼으신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가 되셨다. 죄는 우리가 이미 다뤘듯이 죄의 유전자가 죄라는 사실이다. 죄를 만들어 내는 공장이 바로 우리 속에 있는 유전자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죄의 본성, 그것이 수많은 죄 된 생각을 만들고, 죄 된 행동과 죄 된 말을 만들어 내는 근본 원흉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가 되셨다는 그 죄의 개념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주님이 본인의 존재 위에 우리의 죄를, 죄의 본성을, 죄의 유전자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원한 저주와 심판을 받으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의 사건은 분명히 요한복음 12장 31절의 심판의 사건이다.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심판 날은 이 지구역사의 마지막 날이 아니라 바로 십자가에 주님이 돌아가시던 날이 우리의 죄가 영원히 심판되어진 날인 것이다.

이 지구역사의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은 이미 죄를 끝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의 은혜(우리 대신 사형을 당하시고 우리의 죄를 끝내신 그 은혜)를 죄인이 믿음으로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 들였는가, 아니면 그것을 거절했는가? 하는 것을 심판하는 심판이지 죄는 이미 십자가에서 끝이 난 것이다.

히브리서 9장 12절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다.

고린도후서 6장 2절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오늘이 예수께서 이루어 놓은 구원과 끝내 놓은 심판을 인정하느냐, 거절하느냐? 하는 우리 개인의 종말의 날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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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과연 십자가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과 그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면 거절할 것이냐를 매 순간, 지금이라는 오늘 바로 이 순간에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이, 현재라는 시간이 은혜의 순간들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 사법적 죽음, 예수님께서 율법이 요구하는 죽음을 당하신 사실을 다시 한 번 갈라디아서 3장 13절을 통해서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율법이 죄인에 대해 죽음을 요구하고, 반드시 율법은 죄를 없애야만 하는 것이다. 죄와 하나가 된 죄인을 반드시 없애야 하는 것이다. 죄는 이미 죄인 안에 들어갔고 죄인 속에서 주인이 되었다. 죄와 죄인은 분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죄인은 반드시 죄와 함께 죽게 되는 것이다.

죄를 끝내다

 

율법이 요구하는 죽음을 주님께서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죄인 대신 심판을 당하시고 죄와 함께 죽으신 것이다. 그래서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완전히 이루셨다. 예수님은 반드시 사람이 되셔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의 죄 값을 갚을 길은 없었다. 반드시 사람으로서 돌아가셔야만 했었다. 그것이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 인자 되신 목적이고 이유였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형을 당한 것이다.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다 이루었다. 죄를 끝낸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와 죄의 본성을 끌어안고 끝내셨다. 죄의 열매만이 아니고 죄의 뿌리까지  함께 다 지고 가신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죄를 죄의 결과인 죄의 열매 곧 우리의 밖으로 나타난 행동과 말, 생각만을 말하지만 예수님은 그 죄의 뿌리까지 함께 모두를 죄라고 말씀 하신다. 이것이 다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는 다시 반복될 수 없다. 온전히 죄의 값을 죽으심으로 갚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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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다시 반복하자면 이 죽음은 둘째 사망, 영원히 부활이 없는 사망, 영원한 사망이다. 놀라운 희생이다. 예수께서 우리 대신 영원히 죽으셨다는 것이다. 다시는 부활할 수 없다. 거듭 말하자면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우리를 창조하신 아버지이시다. 그가 만드신 당신의 아들과 딸들의 모든 잘못을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다 짊어지고 다 책임지고 영원히 없애신 것이다.  

영원한 우리의 아버지

이사야서 9장 6절 그는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시다. 영원한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영원히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죄를 영원히 해결하신 아버지이시다. 그는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하여 그는 영원히 돌아가신 것이다. 영원히 우리를 책임지시는 아버지이시다.

중국에 ‘석영’이라는 공자님이 남긴 문헌에 보면 실제로 ‘상제’, 위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라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의 고대인들이 하나님을, 상제를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분명히 에덴동산에서부터 인류의 조상이 우리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보여 주고 있는 명백한 증거이다. 

이사야 선지자도 이사야서를 기록하면서 분명히 말하기를 그는 우리의 아버지시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사야서 63장 16절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상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아브라함은, 우리 조상은 우리를 모른다 할지라도 이스라엘이 곧 이스라엘 민족 조상 중에 한 사람인 야곱이, 이스라엘이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라고 말씀하고 있다. 상고로부터, 태초로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였거늘, 왜? 아버지시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식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존재이다. 그는 자식의 구속자이시다. 

오늘 기독교가 타락하고 변질되면서 아버지가 아저씨로 변했다. 돈 만들어 주는 아저씨, 복 주시는 산타크로스 아저씨, 병 고쳐주는 박사님으로 변한 것이다. 빵 만들어 주는 빵 공장 사장으로 변했다. 아니다! 우리 아버지는 우리의 죄를, 우리의 죽음을, 영원한 사망을 책임지시고 자식 위해 죄와 사망을 끌어안고 영원히 그것을 해결하시고 자식을 영원히 살게 하신 아버지이시다.

 

그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오늘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돌아가야 될 곳은 아버지의 품이다. 우리는 아버지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돈이라는 아저씨를, 세상의 쾌락과 행복이라는 아저씨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우리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사야 44장 22절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될 이유와 근거가 무엇이냐 하면 죄가 해결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할 이유는 세상의 쾌락과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죄를 해결하신 우리 아버지, 우리의 죄로 인하여 영원히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신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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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하늘 아버지가 우리에게 정말 주시기를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의 잠시잠간의 행복인가? 그리고는 영원히 죽어서 없어져 버리는 것인가?
아니다! 영원한 행복이다. 영원한 생명이다. 아버지는 자식이 영원히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아버지의 가장 간절한, 가장 큰 소원이다. 

다시 반복한다. 중요한 얘기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영원히 죽이는 죄를 없애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우리 대신 영원한 죽임을 당하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요한복음 12장 27, 28절에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성전에 서셔서 양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당신의 죽음을 바라보셨다. 그리고 하늘을 향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외치신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말할 수 없이 힘들고 괴롭사오니, 아버지, 길이 있다면 이 십자가의 영원한 죽음을, 짊어 질 자식들의 죄, 그리고 죽어야 될 영원한 죽음을 면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하늘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셨던 주님의 아픔, 그 사랑, 그것은 자식을 영원히 살게 하시기 위해서, 영원히 죽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이사야 9장 6절에 말한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주어진바 되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그 이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말씀한다. 바로 그 아버지의 용서의 가슴으로 돌아가기를 다시 한 번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카워드 : 죄, 유전자, 본성, 심판, 십자가, 율법, 열매, 뿌리, 사망, 아버지, 예수 

성경구절

  • 고린도후서 5장 21절
  • 요한복음 12장 31절
  • 히브리서 9장 12절
  • 고린도후서 6장 2절
  • 갈라디아서 3장 13절
  • 이사야서 9장 6절
  • 이사야서 60장 16절
  • 이사야서 44장 22절
  • 요한복음 12장 27절로 2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