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죽음으로 부터의 구원
흔히 사람들이 구원 받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때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구원의 의미가 아닌 본인이 자기 스스로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구원이 많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이어서 분명히 해 두어야 될 것은 우리가 병이 나아서 구원 받았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정말 간절히 원하시는 최고의 소원은 우리가 죄와 죽음으로부터 영원히 구원 받는 것이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다. 죄의 삯이 사망이라고 할 때에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죄가 해결되어야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죄에 대한 개념 자체가 지극히 피상적인, 수박 겉핥기식의 경험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그 용서에 우리 자신들의 죄를 다 맡기지 못하고 껍데기만 갖다 맡기고 그래서 그렇게 구원 얻었다고 흔히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구원은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그 구원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경이 말씀하신 구원과는 다른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두고두고 중요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냥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 믿음이라는 말이 그 앞에 온 은혜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은 간과해 버리고 그냥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에베소 2장 8절 다시 확인한다. “은혜를 인하여” 이 은혜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내용물이 어마어마하다. 무한하고 영원한 것이다. 이 속에는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된 은혜가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죄가 용서되었다는 이 사실이 이 은혜 속에 담겨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죄를 부분적으로, 피상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만 하나님께 드리고 용서를 받고 그 나머지 죄는 죄가 아닌 것처럼 용서받지 않으려고 하는, 그 죄를 계속해서 누리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늘은 죄를 용서받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하늘은 죄를 스스로 짓지 않아서 그래서 죄가 없어진 사람들이 사는 나라가 아니다. 하늘은 모든 죄를 다 용서 받아서 죄가 없어진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다. 그래서 마지막 구원 얻은 사람들의 모습이 요한계시록 7장에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보좌 앞에 종려나무 가지를 흔드는 모습을 본다. 이 종려나무는 고대로부터 승리를 상징하는 나무이다. 이길 때 그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흔들었다.
그 사람들에 대한 성경 기록, 요한계시록 7장 9절 말씀을 보면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3절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14절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서 모든 죄를 용서 받은 사람들이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분명하다. 하늘은 예수님의 피로 다 씻은 용서 받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다. 기억하라! 다시 반복하면 하늘은 모든 죄를 용서 받아서 그래서 죄가 없어진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다.
마태복음 7장 22절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내가 주님을 위해서 이렇게, 이렇게 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23절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말씀하신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행하고 있는 그 불법이 죄인지를 모르고 그렇게 산 것이다. 사람들이 착각을 한다. 하나님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면 그것이 우리의 구원의 근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산 것은 우리의 구원의 근거가 절대 될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다.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하고 병자를 고치고 많은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고 헌금을 많이 냈는데 그것은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
오히려 죄 많은 세리와 창녀들이, 십자가 옆에 죽었던 강도가, 평생 죄만 지은 죄인들이 예수님의 피로 씻어서 그들이 용서 받아서 그래서 죄가 없어져서 영원한 구원을 얻은 것이다. 오늘 우리는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과연 내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완전히 용서되었는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가장 슬프게 통곡하고 울었던 대상이 예수님 당시에 가장 믿음이 좋다고 했던 종교 지도자들이다. 바리새인들 제사장들 수없이 있다. 이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이 마태복음 23장에 통곡을 하신다.
세리와 창녀를 보시고 통곡을 하신 일이 없다. 그들과는 같이 식사하시고 같이 웃으시고 같이 말씀하셨다. 그들을 영접하시고 그들을 용서하셨다. 그러나 용서를 거절한, 죄가 무엇인지를 알기를 거절한 종교 지도자들은 끝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양심의 바닥을 주님께서 뒤엎으실 때에 견딜 수가 없었다.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씀하신다. 위선자라고 너희 생각에는 악한 생각이 가득하고 음욕과 정욕과 탐욕과 이기심이 교만이 가득한데 그 죄는 내놓고 용서받을 생각은 안 한다는 것이다. 오늘 어쩌면 우리가 그런 사람일 수 있다.
죄가 용서되고 버려진 참된 구원에 이르는 길
다시 반복한다.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다. 하늘은 모든 죄를 용서 받아서 죄가 없어진 자들이 사는 나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로 혹은 믿음으로 구원 얻었다고 말하는데 실상 내용은 아니다.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교만하고 이기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현세적인 구원, 병이 낫고 가난에서 벗어나서 부자가 되고 자식들이 잘 되어서 세상에 명예를 가지고 그렇게 잘 살고 잘 되면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이 가난으로부터, 병으로부터 구원 받았는지 모르지만 죄로부터는 구원 받지 못한 것이다.
그들이 얼마 동안은 행복하게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영원히는 살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속에 교만과 이기심의 죄가 여전히 용서받지 아니한 채로, 없어지지 아니한 채로 여전히 그들의 가슴속에 있기 때문이다. 사단은 사람들을 통해 당신 구원 받았다고 우리를 최면 시킨다. 그러나 예수님이 구원 얻었다라고 말씀하신 사람은 창녀와 세리이다. 누가복음 7장 50절 창녀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누가복음 19장 8절 세리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라고 말씀하셨다. 돈을 버리고 죄를 버렸을 때이다.
실제로 우리 모두는 아직도 돈을 사랑한다. 그 말은 돈에 붙어 있는 욕심을 사랑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죄를 용서 받기를 원치 않는다. 하늘도 가서 영원히 살고 싶고 이 땅에서도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것이다. 욕심을 부리고 살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서 자신들의 돈과 재물을 나누어 주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 욕심을 사랑하고 용서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오늘날 교회는 돈을 사랑한다. 그래서 돈 많은 사람들이 대접을 받는다. 물론 돈이 많은 분들이 하나님 앞에 더 크게 헌신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부자든 가난하든 젊은 사람이든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돈을 사랑한다. 세를 들어 사는 사람은 전세 얻고 싶고, 전세 얻어서 사는 사람은 집을 사고 싶고, 좁은 아파트 27평에 사는 사람들은 32평으로 32평짜리는 48평으로 50평으로 이사하고 싶은 것이다.
여러분, 진정한 구원, 죄로부터 완전히 용서받아서 우리 모든 죄가 용서되고 버려진 참된 구원에 이르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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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로마서 6장 23절
- 에베소서 2장 8절
- 요한계시록 7장
- 요한계시록 7장 9,13,14절
- 마태복음 7장 22,23절
- 마태복음 23장
- 누가복음 7장 50절
- 누가복음 19장 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