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회개

by blogstar posted Jan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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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이 만드는 회개

계속 하면, 하나님의 주시는 회개가 무엇인가? 누가복음 15장의 이 이야기는 참으로 우리에게 감동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개는 우리가 마귀에게 배워서 하는 회개와는 전혀 다르다. 곧 하나님의 사랑이 만드는 회개이다. 

로마서 2장 4절에 보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이,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해서 돌아가게 한다. “회개케” 한다는 말은 “돌아간다”는 뜻이다. 탕자를 보면 첫째로 탕자는 후회한다. 이때에 누가복음 15장 17절에 두 가지 이야기를 한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고 말한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이 두 가지이다. 첫째는 ‘내 아버지이다.’ 우리가 이 말씀 속에서 분명히, 확실히 해야 될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표현은 ‘내 아버지 집에는’이 아니다. ‘내 아버지에게는’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을 때 아버지 집에 가서 영원히 잘 먹고 잘 사는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그 웰빙을 찾는다. 그것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어서 내가 아버지 집에 가서 종들에게 섬김을 받고 잘 먹고 잘 살 것이다. 여전히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 여기 탕자가 분명히 말한다. ‘내 아버지 집에는’이 아니고 ‘내 아버지에게는’이다. 아버지의 사랑의 가슴 속에는 나를 위한 모든 것이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신의 죽게 된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죽게 된 모습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내 아버지를 보지 못한다. 세상의 쾌락과 죄가 눈을 가려서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다. 여기서 ‘내 아버지’라는 말 꼭 유념해 두어야 한다. 우리 아버지가 아니다. ‘내 아버지’이다. 곧 아버지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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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의 개인적인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회개’라고 한다. ‘내 아버지’이다. 죽게 된 ‘나’이다. 사람이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면, 자기의 죄 된 본성을 깨닫지 못하면 본성적인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율법을 문자적으로 이해해서 율법에 의해서 도둑질 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그런 문자적인 계명에 의한 문자적인 회개 밖에는 못한다. 

죄의 본질, 자기의 죄 된 본 모습, 본성이 드러날 때에 본성적인 회개가 일어난다. 율법이 바로 그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율법은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문자적인 계명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율법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이웃과 하나님에 대한 나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율법이 요구한다. 

본성적으로, 본능적으로 사랑이 되어지는 것을 율법이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죄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율법을 배우지 않았다. 겉으로만 나쁜 짓 안하면 죄가 아닌 것이다. 탕자가 돌아간 것은 누가복음 15장 20절에 ‘아버지께로’ 돌아갔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 다시 말하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다. 

회개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회개는 아버지께로, 아버지의 사랑의 품으로, 아버지의 마음으로 돌아간 것을 예수님은 ‘회개’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는 여전히, 여전히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 하늘나라를 가기 원하지 하나님 우리 아버지 사랑의 가슴으로는 돌아갈 마음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여전히 내가 행복하고 내가 세상 것, 맛있는 것, 행복한 인생을 즐기고 싶은 것이다. 회개도 자기를 위해서 자기 행복을 위해서 이기심의 회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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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가슴은 그것이 아니다. 사랑의 가슴, 자기를 다른 이들에게 다른 존재에게 다 주시는 사랑의 가슴이다. 그 가슴, 하나님의 본성으로, 사랑의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이다. 우리는 아니다. 아버지의 집으로는 돌아갈 수는 있지만 아버지의 가슴으로는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으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 가운데 나오는 형은 아버지 품에서 아버지 가슴에서 살았지만 그는 아버지 집에서 살았지 아버지 마음속에서는 살지 않았다. 아버지 재산을 바라고 산 것 뿐이다.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 동생이 돌아 왔을 때 아버지가 소를 잡아서 잔치를 벌이니까 저 소가 내 것인데, 동생 것은 이미 가지고 가서 다 해 먹었는데, 이젠 나머지 것은 내 것인데 왜 아버지가... 

큰 아들은 아버지 마음속에, 하나님 아버지 사랑의 마음속에 산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돈과 재산 속에서 산 것이다. 흔히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진짜 탕자는 바로 그 효자 큰 아들이었다. 진짜 탕자이다. 다시 한 번 확인하면 누가복음 15장 17절에 탕자가 말하기를 “내 아버지 집에는”이 아니고 “내 아버지에게”는 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다음 누가복음 15장 20절에 분명히 ‘아버지께로’ 돌아가리라고, 아버지의 용서의 가슴으로 사랑의 가슴으로 돌아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데 이 아버지처럼 이미 용서하시고 기다리시는 아버지이신 것이다. 우리는 그 아버지의 용서하시고 기다리시는 병이 든, 멍이 든 우리를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의 가슴 속으로 돌아가야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가서 아버지 집에 가서 영원히 잘 먹고 잘 살기를 원한다. 여전히 자기 행복과 자기만족과 자기 죄, 자기 사랑을 구하고 있다. 그 사람들은 아버지의 가슴으로, 아버지 마음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다. 성경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회개가 아니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늘 많은 교회가 아버지 집을 가르치고 있다. 천당 가서, 천국 가서 잘 먹고 잘 산다. 아니다, 우리 찬송가에도 나와 있지만 예수님과 함께라면 초가삼간도 천국인 것이다. 지옥도 천국인 것이다. 사랑하는 주님, 나를 위해서 자기 몸을 버리신, 나를 목숨보다 더 사랑하신 나보다도 더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곳이면 그곳이 천국인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용서의 가슴속이 천국인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의 용서의 가슴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한다. 회개는 용서하고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용서의 가슴으로 돌아가는 것을 성경은, 예수님은 회개라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보여 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바로 이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아버지이다. 아들 때문에 병이 든, 오직 아들만을 기다린 아버지이다. 아버지가 기다린 것은 아들이 가져 간 돈인가? 아니면 아들인가? 돈이 아니다. 아버지가 기다린 것은 오직 아들이다. 하늘 우리 아버지는 이 온 우주의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신 무한한 부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 잃어버린 우리의 인생, 우리의 젊음 영원한 젊음과 영원한 시간을 다시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신다. 그까짓 백년도 안 되는 우리의 인생, 아담이 길게 살았어도 천년을 못 넘겼다. 그 천년이라는 세월동안 죄 짓고 못 된 짓만 하였어도 그 천년과 비교할 수 없는 무한한 세월이, 영원한 세월이 아담의 자손들에게 주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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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과 우리가 잃어버린 청춘, 우리가 잃어버린 기회, 우리가 잃어버린 수많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들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오직 우리만을 찾으시는 것이다. 아들만, 딸만 찾으면 끝이다. 더 이상 그것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 아들을 잃어버리면, 그 딸을 잃어버리면 영원히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 아들을 그 딸을 어떻게 다시 만들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 온 우주와 바꿀 수 없는 것이 우리 같이 더러운 죄인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딸이다. 돼지같이 된 아들을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돼지 아니라 그 어떤 것이라도 기다리고 계신다. 아들만 찾으면 되는 것이다. 딸만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가슴이다. 

그 용서의 사랑의 가슴, 가슴이 아파서 나중에는 그 자식을 가슴에 품에 묻고 천 갈래 만 갈래 갈라지신 그 사랑의 용서의 가슴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을 예수님은 회개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찬송가에 나타난 대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우리 아버지의 병 든 가슴이 우리에게 오늘도 부르짖는 음성이다. 

돌아오라, 내게로 돌아오라! 착한 생활로 돌아오라가 아니다. 이사야 44장 22절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내게로 돌아오면 내가 너를 씻고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 새 생활을 살게 해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아버지의 가슴으로 돌아가시게 되기를 바란다.

키워드 : 아버지, 탕자, 회개, 돌아간다, 죄, 허물, 용서, 로마서, 누가복음, 이사야 

성경구절

  • 누가복음 15장
  • 로마서 2장 4절
  • 누가복음 15장 17절
  • 누가복음 15장 20절
  • 이사야 44장 2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