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죄의 결과

by blogmaster posted Jan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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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은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

예수님이 말씀하신 산상수훈은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이다. 곧 율법을 주셨던 그 주인이 오셔서 율법의 본래의 의미를 우리에게 다시 설명해 주신 것이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들이 이집트에서, 애굽에서 나올 때에 그들의 도덕적 수준은 거의 바닥이었다고 보면 된다. 400년 동안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 그들에게 쉬는 날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애굽 사람들이 매일 부려 먹은 것이다. 거의 동물의 수준에 가깝게 되었다. 일하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는 것이다.

내가 미국 여행하면서 미국 남부에서 실제로 그런 관광지 비슷한 곳을 갔다. 관광지라 하기엔  너무나 그랬다. 옛날 남부에 부잣집, 대리석으로 잘 지은 집이 있고 그 뜰의 한 쪽 구석에 헛간이 있었는데 거기에 흑인들이 살았다. 흑인들은 침대에서 자지 않고 그냥 흙바닥에서 잤다. 부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돌 두서너 개 놓고 솥단지 하나를 걸어 놓고 그러고 살았다. 거의 짐승수준이다.

4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반포하실 때 그렇게 우레와 지진 가운데서 크게 말씀하시고 땅을 흔드는 지진 속에서 두려움으로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그렇게 안하면 이 사람들은 들을 사람들이 아니다. 노예는 말과 같이 채찍으로 다스린다는 말이 있다. 애굽의 노예였던 그들은 점잖게 이렇게, 이렇게 해라 부드럽게 말하여 들을 사람들이 아니다.

그렇게 말씀했는데도 불구하고 조금 후에 모세가 없어지니까 애굽에서 자기들이 못 놀아 봤던 것 놀아 보자 해서 애굽의 자기들의 주인들이 놀았던 그 놀음을 한다. 금송아지를 만들고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이제 우리 세상이다 하고 술 마시고 고기 먹고 일어나서 춤추고 뛰놀고 미친 광란의 몸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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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구약에, 예수님께서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이 세상에 오셔서 다시 자세히 설명하신 것이 산상수훈이다. 산상수훈은 율법을 다시 재설명하신 말씀이다. 그 말씀 중에 우리가 지난 시간에 보았듯이 예수님께서 율법의 본질을 드러내셔서 설명을 하신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마태복음 5장 38~42절을 보시면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 지 말라” 계속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네 오른 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이상한 이야기가 여기 나와 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기 21장 24절“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상대방이 나를 주먹으로 때려서 이빨이 부러지면 나도 그 사람 이빨을 부러뜨릴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게 들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반대로 네가 오른편 뺨을 맞았으면 너도 그 사람 오른 편 뺨을 치지지 말고 네 왼쪽 뺨을 돌려대고 그 사람 화가 다 풀어질 때까지 맞아주라. 오, 그런 법이 어디 있는가? 분명히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했는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여기에 들어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말씀은 모세 오경 가운데 세 번 인용되고 있다. 그 말씀들은 다 찾아보면 법적인 용어이다. 

소위 내가 어떤 사람에게 빚을 졌다. 그러면 그 빚을 50%나 혹은 80%를 적당히 갚고 그냥 나머지는 안 갚아도 된다. 그 말이 아니고 “눈은 눈으로” 눈을 내가 다치게 했으면 그 눈을 완전히 복구시켜 주어야 된다. 정 안되면 네 눈을 빼서 주어라. 빚을 진 채무자로서는 빚을 준 채권자에게는 반드시 100% 다 갚아야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제 입장이 바뀌었다. 내가 그 사람한테 빚을 주어서 그 사람이 나에게 돈을 돌려주어야 되는데 내 돈을 가져간 그 사람에게 절대로 어려울 때는 받지 말고 반대로 그 사람 어려운 것을 오히려 도와주라는 그런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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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입장이 두 입장이다. 내가 빚을 갚아야 할 때는 100% 다 갚아야 되고, 내가 남에게 돈을 빌려줘서 받아야 될 때는 받지 말고 오히려 더 주라는 것이다. 누가 그렇게 하는가?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렇게 한다. 엄마가 딸에게 그렇게 한다. ‘이런 본능적인 사랑이 되어 질 때 율법이 지켜지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 기억하라! 

누가 억지로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까지 가는가? 친정엄마다. 내가 내 식구하고 살 때, 젊었을 때이다. 가난한 사람이었다. 내가 돈이 별로 없는데 정말로 살기가 어려웠다. 장모님이 우리가 가면 된장 간장 고추장 김치 먹을 것을 얼마나 많이 싸 주셨는지 모른다. 그것을 이고 들고 등에다 다 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장모님이 집 앞에서 우리가 이제 가겠다고 인사하면 절대로 인사를 받지 않는다. 그리고 그냥 앞으로 나가셔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고 그 짐을 다 택시 안에 싣고 그 다음에 맨 앞자리에 앉으신다. 우리 부부는 뒤에 앉는다. 앞자리에 앉는 사람이 택시비 내는 것이다.

그 다음에 터미널 앞에 까지 와서 택시비 지불하고 짐을 또 꺼내어 들고 ‘안녕히 가시라고, 어머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드리면  대답을 않는다. 또 아무 말 없이 가서 버스표 세장을 끊어온다. 그리고 또 그 무거운 것을 차에 다 싣고 저 앞에 가서 앉으신다. 그리고 우리 사는 도시의 터미널에 내려서 다시 이제 버스타고 집으로 도로 가시라고 말씀드리면 또 대답을 안 하신다.

또 택시를 잡아 그 된장 간장 다시 싣고 또 앞자리에 타신다. 그리고 우리 집까지 오신다. 택시비 내고 또 그것을 꺼내어 우리 부엌의 제자리에 갖다 놓고 그리고 돌아가신다.

자식이 원하지 않아도, 시키지 않아도 엄마는 십 리 아니라 백 리를 따라 오신다. 그것이 무엇인가? 본능적 사랑이다.

어쩌다가 딸이 친정집에 갔는데 엄마가 아주 예쁜 옷을 사 놓았다. “엄마 이것 어디서 났어요? 어디서 샀어요? 너무 예쁘다.” 엄마는 “너 입을래?”하고 내 준다. “그 블라우스에는 이 옷이 어울린다. 구두는 이 색이 어울린다.” 한 벌을 새로 주는 것이다. 예쁜 도둑, 다 가져가도 예쁜 도둑! 그것이 딸이다.

여기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인가? 사랑하면 다 준다는 것이다. 누가 거절하지 않는가? 누구에게 거절하지 않는가? 사랑하는 아들이, 사랑하는 딸이 달라고 하면 거절하지 않는다. 정말 모든 것을 다 주는 것이다. 그리고 받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세상이 강퍅해져서 요즘은 부모 자식 간에도 돈 거래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본능적인 사랑을 가진 부모는 자식에게 모든 것을 다 준다.

예수님 말씀대로 겉옷을 가지고자 하면 속옷까지 내주는 것이다. 그리고 결코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않는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설명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다.

‘완전’의 의미는 ‘사랑’이다.

마태복음 5장 48절“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여기 ‘온전’이라는 단어, 이 똑같은 말을 누가복음에는 누가가 이방인 총독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써 보내면서 거기에 이 말의 본래 뜻을 설명해 놓았다.

누가복음 6장 36절,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여기 ‘완전’의 의미는 ‘사랑’이다. 사랑의 완전이다. 효자 자식이든 불효자 자식이든 상관없이 똑같이 사랑한다. 악인에게도 의인에게도 똑같이 비를 내리시고 해를 비추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 사랑의 완전함을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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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것이 죄다. 없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다. 이 사랑을 누가 없애 버렸는가? 이 본능적 사랑을 마귀가 다 짓밟아서 죽여서 없애 버린 것이다. 그것이 죄의 결과이다. 죄는 참으로 참혹한 것이다.

죄는 자신 밖에 모르는 이기심으로 사람을 완전히 죽였다.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과 딸을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심의 자식들로 바꿔 놓았다.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을 죽인 것이다. 그것이 창세기 2장 17절에 네가 범죄 하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했던 그 죽음이다. 사랑의 유전자가 다 죽어 버린 것이다. 본능적으로 사랑이 되는 유전자가 죽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이 본능적으로 된 사랑의 유전자로 주님께서 다시 만들어 주시려고 할 때

그 사랑에 우리가 자신을 맡겨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본능적으로 사랑이 되는 유전자로 다시 태어나야 된다. 그것이 예수님이 ‘거듭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길이다.

여러분, 죄는 너무나 참혹한 것이다. 사랑을 다 죽였다. 사랑의 죽음이 죄의 마지막 결과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그 사랑을 우리 안에 다시 재창조해 주실 것이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5장 38절로 42절
  • 출애굽기 21장 24절
  • 마태복음 5장 48절
  • 누가복음 6장 36절
  • 창세기 2장 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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