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믿음'

by blogstar posted Nov 2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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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구원을 얻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믿음'에 대한 많은 말씀을 하셨다.

주님께서 환자들을 고치실 때에 거의 매번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 하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을까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가 그 사람들을 구원했을까? 그런데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다.

에베소서 2:8절 말씀에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기록하셨는데, 이 말씀을 보면 구원의 공식이 나와 있다.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 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은혜가 우리의 구원의 근거인데도 불구하고, 주님께선 우리가 주님께 맡기는 믿음을 칭찬하셨다.

이방인 이있던 백부장의 믿음

믿음에 대한 특별한 칭찬이 나오는 성경 절이 마태복음에 나온다. 

마태복음 8:5에 이방인이었던 로마의 백부장, 백사람을 거느린 장교라서 백부장인 이 장교가 자신의 하인이 몹시 큰 병에 들어있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께 내 하인이 몹시 괴로워한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고 7절에 가서 고쳐 주리라고 하셨다. 그랬더니 백부장이 대답하기를 '주여 내 집에 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라고 했다. 참 이분이 보통사람이 아니다. 

그러면서 설명한다. 9절, 이 백부장의 믿음을 살펴보자. 예수님이 자기 집에 들어오시는 것이 너무나 송구스러워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까 말씀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고 한다. 우선 앞에서부터 보면 이 사람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있던 사람이다. 이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다. 성경도 잘 모르는 사람이고 할례를 받은 유대인이 아니다.

그런데 예수님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았다. 정직한 사람이다. 예수님 안에 계시는 능력을 보았다. 그래서 전적으로 주님에 말씀에 매달린 것이다. 완전히 그 말씀에 대한 확신과 더불어 그분이 하신 모든 병 고치는 능력을 보았고. 전적으로 주님의 능력의 말씀을 의지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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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을만한 수많은 증거를 주셨다. 그렇지만 그것을 믿고 안 믿고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있다. 이 증거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도와주시기 위해 있지만 그러나 이 증거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주님께서 여러 병을 고치시면서 보여주신 증거는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하나의 밖으로 나타난 증거, 표적일 뿐이지 이 기적을 행하신 우리 주님 안에 계신 능력과 사랑 바로 그것이 우리가 믿는, 의지하는 대상인 것이다.

이 백부장이 예수님 안에 계시는 능력을 보았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다. 명령하면 군사들은 순종한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이 명령만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말을 들으시고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스라엘에서 이 만한 믿음을 본적이 없다고 하셨다.

믿음이 뭔가? 믿음은 단순하고 정직한 것이다. 이 정직하고 단순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경험할 때에, 그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전적으로 자신을 맡기는 믿음을 갖게 된다. 잠언에 여러 번 기록하신대로 우리의 생각이 우리 인생의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의 자유의지가 어떤 방향으로 방향을 돌리느냐에 따라서 하나님께로 향하느냐 아니면 내 자신의 욕심을 향하느냐에 따라서 삶이 바뀌고 신앙이 바뀐다.

이 사람은 정말로 정직, 단순한 것이 분명한 것이다. 얼마든지 자기 자신의 본성에 따라 생각할 수 있었다. 이 마태복음서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다른 복음서인 마가 누가 이런 곳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이 사람은 유대인의 회당을 지어주었다. 유대인들에게 선을 베푼 사람이다. 

비록 자기는 이방인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당시의 원수나라라고 할 수 있지만, 유대나라를 사랑했던 사람이다. 로마서 2:13-15말씀에 양심에 기록한, 하나님의 법을 따라서 순종하는 이방인들이 있다. 십계명은 본래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기록해 주신 것이다. 비록 타락하고 망가졌지만 성령께서 아직도 이방인들 중에 역사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이방인들 중에 이렇게 정말로 마음을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굴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중에 한 사람이 이 사람이다.

바라봄으로 구원을 얻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다.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는 수많은 능력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에 나타나심을 다 부인하고 거절하였다. 무엇 때문인가? 그들 속에 있는 교만과 욕심 때문이다. 어느 시대나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서, 정치의 지도자들에 의해서 역사는 바뀐다. 지도자들이 역사의 주인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멸망 한 것도 똑같다. 왕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타락했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그 지도자들의 마음의 방향에 따라 가는 것이다. 사단이 그런 사람 통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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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백부장의 ‘믿음’을 다시한번 우리는 살펴보아야 한다. 무엇을 보느냐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운명을 결정한다. 바라봄으로 구원을 얻는다. 무엇을 생각하느냐 무엇을 쳐다보느냐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수많은 믿을만한 증거를 이미 우리에게 주셨다.

바라봄의 이야기를 나눠보자. 민21:8,9는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뀐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8절, 9절, “보면 살리라”  “쳐다본즉 살더라”고 기록되었다.

이 사건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인용된 사건이다. 요한복음 3:14,15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불 뱀을 보내신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이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불평한 이유가 뭔가? 40년 동안 계속 불평한 그 이유는 애굽 사람들의 삶으로, 그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서 이다.

재미있는 것이다. 애굽의 문화는 밤 문화 이다. 애굽과 인도는 비슷하다. 인도는 신이 너무 많다. 신을 위한 축제를 밤에 한다.  춤추고 노래 부르고 먹고 마시고 왜냐면 저녁이 좀 서늘해서, 그래서 마귀문화는 밤 문화이다. 밤에 잠을 못 자게 한다. 그래서 뇌가 망가지는 것이다.

사단이 뇌를 점령하려 노력한다. 뇌를 점령하면 자기 것이 되기에, 의지력과 판단력을 파괴한다. 결정하는 힘을, 의지를 마비시킨다.  사단이 뇌를 점령해야만 우리를 점령 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식욕과 정욕의 방종을 통해서 도덕적 감각을 마비시킨다. (마 24:37,38) 영적, 도덕적 무감각, 감각이 없어지는 것이다. 사단은 언제나 그렇게 해왔다.

이 사람들이, 광야에서 불평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때 되면 생수를 열어주시고 ‘만나’를 주시고, 그렇게 하셨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불평한다. 왜? 끝까지 고집을 피우고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가? 저녁에 맛있는 쾌락의 맛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낮에는 일한다. 때론 매 맞고 일하지만 저녁이 되면, 라이브 쇼, 여자들이 속이 다 보이는 망사 같은 옷을 입고 춤을 추는 것이다. 우상에게 절을 한다. 이 사람들이 애굽에서 그렇게 산 것이다. 

그래서 도저히 이 사람들이 말로해선 안 되는 것이다. 때로는 심판해서 죄를 깨닫게 하시는 벌도 주나 오히려 더 반역하는 것이다. 모세에게 ”네가 우리 백성을 다 죽인다!”하면서 대모 하는, 정말 감당 안 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불 뱀을 보내신다. 이제 또 한 번 회개하라고 회초리를 드신 것이다. 이 뱀은 색도 약간 붉고 독해서 물리면 얼마 뒤에 죽는다. 엄청나게 고통스럽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리하고 끝내지 않으셨다. 매를 때리고 끝내지 않으셨다.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을 보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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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민수기 21장 8절에 불 뱀을 만들어서 매달라고 하였다. 이 불 뱀은 뱀이 없고, 그냥 불이다. ‘사라프’는 ‘불덩어리’이다. ‘불, 불덩어리를 달아라’ 이게 무슨 말인가? 뱀의 목을 철사로 묶어서 불을 붙이면 어떻게 될까? 뱀이 온몸을 비틀고 타서 뚝뚝 떨어질 것이다, 얼마 가지 않아서 뱀이 없어질 것이다. 히브리말이 뉘앙스가 대단하다. 불을 달아라. 이 붉다는 말은 성경에서 죄를 가르킨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진홍같이 붉을 지라도 , 이 붉은색, 이것이 불의 색깔이다. 불타는 뱀을 달아라 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이 불붙은 뱀은 무엇을 상징 하는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저주를 받는 뱀. 뱀이 누구인가? 우리가 뱀이다. 나라는 존재가 뱀이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44에 우리는 마귀 곧 뱀의 자식, 독사의 자식이다. 독사의 자식이란 말을 우리에게 하실 때마다 피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내가 만들 때는 양같이 순하고, 착하고, 사랑밖에 할 줄 모르는 어린 양 같던 아이들이 어느날, 보니 독사에게 물려 독사의 자식이 되어 있는 것이다. 자기밖에 모르고, 이기적이고 뱀처럼 된 것이다, 죽어 없어져야만 하는 우리의 이기심과 우리의 교만, 그것이 되셔서, 뱀이 되셔서 저주받고 불에 타 없어져 버리시는 불 뱀이 되시는 예수님, 인자가 오셨다. ‘인자’의 뜻이 무엇인가? 죄인의 종, 죄인 대신 죽는 대속물이다. 그러나 모세가 불 뱀을 달라고 하니까 놋 뱀 곧 구리 뱀을 달았다. 뱀은 금방 사라지니까 이 불 뱀과 색이 비슷한 놋으로 불 뱀을 만들었다. 구리로 만들어서 구리 뱀이지 기본적으로 불 뱀이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 돌아가신 예수님

이 불에 타는 불 뱀처럼 예수님이 나무에 매달려서 하나님의 심판의 불에 의해 태워지는 것이다. 성소의 제단 위에 올려 진 어린양인 것이다. 물론 우리 죄가 그 속에 있다. 우리의 죄가 예수님께로 옮겨져서 우리는 양이 되고 예수님은 불이 되는 것이다. 교환이다. 하나님의 불에 의해 태워지는, 소멸되는 즉 둘째사망 즉 다시는 부활이 없는 사망, 영원한 사망인 것이다. 이 둘째사망을 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뱀이 불타는 모습으로 나타내셨다.

그리고 무엇이라 그러셨는가?, 이 ‘구리뱀’을 ‘쳐다보라’고 하셨다. 민수기 21:9의 ‘쳐다보다’는 히브리어가 ‘나바트’라는 동사인데. 이 동사는 스가랴 12:10에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로 기록됐는데

이 동사가 흥미롭게도 스가랴 12:10절에 사용되었다. ‘쳐다본즉 살더라’는 의미는 스가랴서 12:10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무엇을 쳐다본즉 살았는가? 불타는 구리 뱀을 쳐다본즉 살았다. 즉 불 뱀 되신 예수님을 쳐다본즉 살았다.

요한복음 3:14,15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쳐다보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을 동일선 상에서 말씀 하셨다.

‘쳐다보는 자마다 살리라’는 의미를 이 불 뱀의 원형, 불 뱀의 실체, 본 모습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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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분명 쳐다본즉, 이 ‘쳐다본다’는 말이 예수님은 실제로 말씀하시길 ‘믿는다’라고 설명하셨다. 믿는 것이 뭔가? 쳐다보는 것이다. 로마 백부장이 무엇을 봤는가?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보았다. 아! 저분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의 사랑이 계신다. 불쌍한 환자들을 정말로 사랑하시고 동정하시고, 그들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치료하시는 능력을 쳐다본 것이다. 그러니까 ‘내 집에 들어오시는 것,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주님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라고 말 한 것이다.

전적으로 주님의 사랑과 능력에, 그 말씀에 완전히 맡긴 이 단순한 믿음은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무엇을 봤느냐에 따라서 그 믿음이 결정된다는 것을,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믿는 것은 쳐다보는 것이다. 우리가 뭘 쳐다보면? 십자가가 아닌 텔레비전을 쳐다보면 , 돈을 쳐다보면 생명이 없는 것이다. 죄를 쳐다보면 죄와 함께 멸망한다. 멸망 안하는 사람이 있는가? 없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 부인 이름은 재클린이다. 재클린 케네디가 자기 남편이 죽고난후 세계의 선박왕인 오나시스라는 사람과 결혼 했는데 그는 돈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러나 오나시스도 재클린 앞에서 죽었다. 그리고 재클린이 죽기 전에 선전을 했는데 나를 살게 해주면 나의 전 재산을 다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죽었다. 재클린이 대통령을 쳐다보다가, 돈을 쳐다보다 끝났다. 세상 최고의 권력자, 미국 대통령부인도 돈을 쳐다본즉 죽었다. 

세상 떠날 때, 돈 가지고 가는가? 마귀 믿는 사람들은 사람 장례식 할 때 옷을 12개 넣는다. 옷을 입힐 때마다 돈을 넣는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저승에서 12개의 문을 통과할 때마다 잘 보여야 지옥에 안 떨어진다고 믿는다. 그 돈은 나중에 다 썩어 없어진다. 사람들은 죽을 때 1원도 못 가져가는데도 그러고 있는 것이다. 참 희한하다. 못 가져갈 것을 알면서도 붙잡고 있다. 너무 신기하지 않은가?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영생을 얻음

뭘 쳐다본즉 산다고 했는가? 불 뱀이다.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마다 산다고 했다. 믿는다는 말은 쳐다보는 것, 그냥 쳐다보는 것이 아닌 살려달라고 자기를 전적으로 맡기는 쳐다봄이다, 

병 걸린 사람들이 의사를 쳐다본다. 의사가 말 한마디만 잘못하면 죽어버린다. 의사가 괜찮습니다 하면 산다. 그러나 의사가 조금 안 좋은데요 하면 그날 상한다. 죽어버린다.

어떤 분이 미국에서 개인병원을 여셨다. 종합 검진기계를 사가지고 개인병원에서 사용하였는데 한 분이 다른 병원에서 암이라고 진단을 받아서 엄청 절망하며 죽어있었는데 갑자기 종합검진을 다시 그 병원에서 받고 암이 아니고 기름 덩어리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발딱 일어났다. 바로 살았다. 얼굴에 핏기가 돌기 시작하고 살았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죽도 못 먹던 이가 살아서 설렁탕도 먹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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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그런데 우리는 의사 말은 믿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왜 그렇게도 믿지 않는가? . 영원히 사는 길을 가르쳐 주시는 진짜의사인 예수님의 말은 안 믿고 왜 마귀 말은 그렇게 좋아하고 잘 믿는가?  무엇을 보느냐, 누구의 말씀을 듣느냐가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한다. 성경에 그런 이야기가 수없이 나온다.

마태복음 9:1- 8의 내용을 보면 이 사람은 전신마비가 온 중풍병자이다. 움직일 수도 없고 말도 못하는 것이었다, 한순간에 사람이 그리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환자를 친구들이 들고 가서 예수님 주위까지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지붕을 뚫고 내려 간 것이다. 지붕을 뜯을 정도면 믿음이 대단한 것이 아닌가? 믿음이 무엇이라 했는가? 맡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집에서 출발할 때에 병이 꼭 나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예수님께로 왔다. 오는 도중에 죄를 보여주셨다. 그는 난봉꾼 중에 난봉꾼이었다. 이 사람이 지붕을 뚫고 내려올 때 예수님께서 하신 첫 마디는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했다.  전혀 병과는 상관없는 말씀을 하시고 계셨다. 

우리가 이빨 아프면 내과에 가는가, 아니면 치과에 가는가? 당연히 치과병원에 간다.

이 사람이 예수님께 맡긴 것은 무엇인가? 병 낫게 해달라고 했는가, 아니면 죄 용서해 달라고 했는가? 성경에 이 기록은 없는데,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소리를 예수님께서 들은 것이다. 지붕을 뚫고 내려오는 순간, 예수님의 눈과 이 사람의 눈이 딱 마주치는 순간, 이 사람이 주님을 바라보면서 한 이야기가 ‘주님 나같이 불쌍한 인간도, 이런 더러운 인간도  용서 받을 수 있나요?’ 이였다.

그러니까 대답은 무엇이었는가? 죄를 맡겼으니 죄를 용서 하는 말씀을 하실수 밖에 없지 않은가? ‘소자야 걱정하지마라. 내가 이미 네 죄를 용서하였다. 네가 죄를 용서 받았느니라’고 하셨다. 이 사람이 예수님께 맡긴 것은 자기 죄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였다고  하셨는데, 유대인들이 ‘저 나쁜 놈 봐라, 저놈이 감히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밖에 용서 못하시는 죄를 자기가 용서하였다’고 하면서 난리가 났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는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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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생각이 무엇인가? 예수님 말씀과 반대되는 생각이 악한 생각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아버리는 생각이다. 여러분 ,그 말이 거짓말일 지라도 환영하고 아멘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 불쌍한 죄인을 용서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저놈이 감히 인간이 되어가지고’라고 하였다. 

이것은 무엇인가? 그 불쌍한 죄인을 사랑하지 않고 용서할 마음이 없는 자칭 의인들의 생각인 것이다. 사랑의 반대가 바로 악이다. 빈말일 지라도 그 말을 환영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사람은 죄인을 용서할 수가 없다.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그것을 예수님이 증명하셨다. ‘내 얘기 좀 들어봐라, 얘를 용서해주는 것하고 병을 고쳐주는 것하고 어느 것이 쉽냐?’

중풍 병은 중국에 가면 침 잘 놓는 의사가 있다. 침만 잘 놔도 벌떡 일어나고 고칠 수 있다. 그러나 죽을 사람 대신 해서 죽고 죄를 용서해 주는 것은, 누가 할 수 있는가? 어렵다. 할 수 없다. 왜, 그런가? 자기가 대신 죽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를,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는 권세가 있는 줄을 내가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 저 사람의 병의 원인은 죄다. 내가 죄를 용서해주면 저 사람이 일어나서 병에서 놓인다’는 것을 직접 증명 하셨다. 그리고 ‘일어나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고 하셨다. 그러자 그 중풍병자가 벌떡 일어났다. 그냥 비틀비틀 걸은 것이 아니고 토끼처럼 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기록 되었다.

여러분 이 중풍병자와 그 친구들이 보여준 ‘믿음’은 무엇인가? 목숨을 걸고 , 그 지붕을 뚫어서라도 자기를 용서할 수 있고, 자기를 고쳐줄 수 있는 그 유일한 분에게 전적으로 자신을 맡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다

이 불쌍한 중풍병자가 붙든 것이 무엇인가? 

그분의 말씀. 그 말씀이 그 심령을, 죄를 뚫고 들어가 그를 부활시킨 것이다. 죄로 죽은 그를 질병의 원인인 죄가 사라지니까 죄의 결과인 병이 사라지는 것이다. 새 생명으로 그 육체가 부활하는 것이다. 새로운 창조, 그래서 죄 용서는 새로운 창조이다. 고린도후서 5:17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창조의 복음이다.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백부장이 믿었던 것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의 용서의 능력, 말씀하시매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었다. 여러분, 중풍병자는 질병과 죽음의 원인인 죄가 사라졌기 때문에 주님은 불쌍한 중풍병자에게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생명인가? 생명이다. 그 마음과 육체가 부활하였다. 생명이 맞다. 그분의 말씀은 생명이다.

창세기 15:5-6 “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는 말씀 중에 아브라함은 앞에 있는 5절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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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다. 믿음 없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 없는 자신을 맡긴 것이다. 우리는 믿음이 없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의 ‘약속의 말씀’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 내가 믿음이 있어서 구원 받는 게 아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맡기는 것이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용서하고 저주하지 마라’ 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속으로는 벼락 맞아 죽길 바라는 마음이 있을 때가 있다. 우리가 믿음이 좋아 구원 하시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예수님께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선 시간의 여유가 있으시다. 맡기면 맡아주시는 분이 알아서 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왜 빨리 응답 안하시냐고 안달이 난다. 믿음이 없고 가볍기가 낙엽처럼 가벼운 우리다. 그래서 그렇게 안달하고 못 참는다. 믿음은 반듯이 응답하시는 때가 있다. 맡기는 우리는 맡기기만 하면 되고 맡으신 분은 하나님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시간과 방법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고 맡기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무엇을 쳐다봐야 하는가?, 누구를 바라봐야 하는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그리스도,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요한복음 3:16에 “저를 믿는 자 마다”의 “믿는 자”는 무슨 뜻인가? ‘저 속에 들어가서 맡기는 자마다, 목숨 걸고 들어가서 다 맡기는 믿음, 성경은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는다’고 하였다.

누가복음 18:8“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고 하셨다. 말세가 되면 믿음이 점점 없어진다고 한다.

누가복음 18:1-7에 어떤 가난한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 그래서 고약한 부자 법관에게 찾아가 날마다 사정한다. 원한을 해결해 달라고 날마다 간청하지만 이 부자 법관은 생각이 돈밖에 없다. 돈도 없는 주제에 맨 날 와서 간청하지만 안 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부는 날마다 가는 것이다.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한다. 드디어 어느 날 , 이 부자 법관이 생각하길 ‘저 할머니 때문에 못살겠다. 이걸 빨리 안 들어 주면 계속 괴롭힐 것이다’ 라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해결해 주었다. 만약에 이 과부가 오늘까지 왔는데 ‘안 들어주면 포기하자 안 되겠다’ 하면서 내일 안 갔으면 들어 주었을까?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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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여기서 말씀하신 ‘믿음’은 응답 받을 때까지 맡기는 믿음이다. 하나님이 신실하신가? 신실하시다.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 밖에 없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죽은 다음에도 우리의 기도를 응답 하신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다. 죽는 시간까지 맡기면 우리가 죽은 다음에도 응답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제발 죽는 시간까지 믿고 맡기자.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자기의 말씀을 결코 어기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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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에베소서 2장 8절
  • 마태복음 8장 5절
  • 로마서 2장 13-15절
  • 민수기 21장 8-9절
  • 요한복음 3장 14,15절
  • 마태복음 24장 37,38절
  • 요한복음 8장 44절
  • 민수기 21장 9절
  • 스가랴 12장 10절
  • 마태복음 9장 1-8절
  • 창세기 15장 5-6절
  • 요한복음 3장 16절
  • 누가복음 18장 8절
  • 누가복음 18장 1-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