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에 나타난 제사들의 의미-화제
이제 우리가 성소에 나타난 제사들의 의미를 함께 찾아보자. 성소에서 말씀드린 대로 불이 제물을 사루어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지는 것이다. 이것을 불에 의한 제사라고 해서 불 ‘화(火)’자, 화제라는 말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특별히 화제의 종류가 크게 나누어서 네 가지, 좀 더 자세히 나눈다면 다섯 가지 정도의 화제가 있다. 첫째로 화제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번제’라고 하는 제사이다. 이 번제는 히브리말로 ‘올라’라는 말로 쓰이는데 이 뜻은 우리 한국말과 똑같이 ‘올라간다’는 뜻이다. 이 번제를 태운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한국말로는 번제, 태울 ‘번(燔)’자, 번제이다, 그렇게 쓰지만 히브리말은 ‘올라가는 제사’란 뜻이다.
이것을 흔히 ‘전제’라고도 부른다. 전부 다 남김없이, 다른 제사와 달리 전체를 다 불태워서 하나님께 드린다 해서 ‘전제’라고 부른다. 여기서 레위기서 1장 9절을 보면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그 전부 바친다 해서 ‘전제’라는 말로도 쓴다.
두 번째는 소제이다. 이것은 우리 한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한문을 보아야한다. 흰 ‘소‘(素) 자 소제이다. 곡식을 가루를 내서 드리는 제사이다. 곡식가루 제사라고 흔히 부른다. 이것은 소위 번제나 화목제에 첨가 되어서 같이 드리는 제사이다. 소위 부가 제사라고 흔히 말하는데 단독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고 다른 제사와 같이 간다. 이것도 아주 중요한 제사이다.
세 번째는 화목제, 우리말로 그렇게 번역했다. 이 화목제는 히브리말로 ‘샬라밈’이라 하는데 이 말의 뜻은 ‘평화들’ ‘샬롬’의 복수이다. ‘평화들’, ‘풍성한 평화’라는 뜻이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화목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희생이 치루어 지는지 이것은 우리가 나중에 자세히 보겠지만 먹는 제사이다.
제물이 먹어서, 하나님도 드시고 제사장도 먹고, 드리는 사람도, 죄인도 먹고 해서 양이 없어진다. 먹는 제사이다. 흔히 우리가 성경을 읽다보면 이 제사를 가리키는 ‘희생’이라는 단어가 자주 성경에 나온다. 100%는 아니지만 거의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이 희생이라는 단어, 히브리말에 ‘제바크’라는 단어인데 이 ‘희생’이라는 말은 거의 ‘화목제’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아닌 경우도 있지만 상당히 많다.
네 번째는 ‘속죄제’라는 제사이다. 이 속죄제는 ‘하타아’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 뜻은 ‘죄’이다. ‘속죄제’를 드린다고 할 때는 히브리말로 읽으면 ‘죄를 드린다’는 표현이다. 이 제사는 속죄의 과정을 보여주는 제사이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죄인의 죄를 처분하시는지, 그 속죄 곧 죄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말소하시는, 없애버리시는 그 전 과정이 속죄제 속에 나와 있다. 유일하게 속죄제만 제물의 피가 성소 안으로 옮겨진다.
위의 세 가지 제사는 번제단에서 끝이 난다. 그러나 이 속죄제만큼은 성소 안으로 피가 옮겨지는 것이다. 이 속죄제 안에 우리가 다섯 번째 라고 부를 수 있는 ‘속건제’라는 제사가 있다. 이 제사의 히브리말로는 ‘아샴’ 뜻은 ‘부끄러운 것’이라는 뜻이다. 이 제사는 흔히 ‘배상 제사’라고 한다. 반드시 값을 물어주는 제사이다.
상당히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것을 손실을 내었을 때, 이웃의 것을 손실을 내었을 때, 배상을 하는, 단순히 용서해 달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배상을 요구하는 그런 제사이다. 어떤 사람들은 속죄제의 일종이라고도 보고, 속죄제와 구별해서 달리 보는 사람들도 있다. 때로는 속죄제와 같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한 범위 안에 넣어도 상관은 없다.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곳-성소
레위기서 1장 1절,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제사 제도를 설명하시는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회막에서 부르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소의 여러 가지 이름 중의 하나가 회막이다. 만남의 장소, 만남의 천막이다. 모세오경은 모세가 기록할 때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기록은 전체가 연결되어 있다. 따로따로가 아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50장에 보면 요셉의 죽은 이야기가 나온다. 출애굽기 1장에 보면 요셉의 이야기가 또 나온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애굽의 왕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이야기이다. 출애굽기가 마칠 때에 출애굽기 40장에 보면 성소가 완성이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 성소 안에 계신다. 성소 안에 하나님께서 직접 영광, 쉐키나 가운데 들어오신다. 그래서 드디어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같이 사시게 된다.
출애굽기 25장 8절 말씀에 “내가 너희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지으라” 같은 말이다. 그러니까 구약의 성소는 하나님이 우리하고 같이 사시는 그런 신혼 방이다. 그래서 이 성막을 부를 때 ‘증거의 장막’이라고 불렀다. ‘증거’는 출애굽기 31장 18절에 증거의 두 판,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결혼하셨다는 것을 증언하는 ‘증언 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종이에다 기록했으면 증서이다. ‘증서’, 종이 ‘서(書)’자이기 때문에 증서이다.
여기에다 ‘증거 판’ ‘돌 판’ 하나님께서 우리와 결혼하셨다는 것을 증언하는 판이다. 이 증거 판 속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언약을 맺으신 언약의 내용이 들어있다. 그것을 ‘언약의 비석’이라고도 부른다. 이 언약의 비석을 담고 있는 법궤를, 십계명을 담고 있는 십계명을 법으로 보았을 때에는 ‘법궤’이고 그것을 언약으로 보았을 때에는 ‘언약궤’이다. 그래서 이름이 각기 다르다. 그리고 때로는 언약의 장막 성소를 ‘언약의 장막’이라고도 부른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르는 이유가 있다. 그런데 이것을 ‘증거의 장막’ ‘언약의 장막’ 혹은 오늘 우리가 보는 ‘회막’ 곧 레위기서 1장 1절에 나타난 만남의 장막, ‘tent of meeting’ 만날 ‘회(會)’자, 회막. 주님께서 우리와 만나시는 장막이다. 이 회막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만나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죄를 해결 하셔야만 우리와 만나실 수가 있다.
이사야 59장 1, 2절에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막힌 담이 하나있다. 유일한 담이다. 그것은 ‘죄’이다. 죄라는 담을 헐지 않으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쪽에서 밀어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담이다. 이 담은 하나님께서만 무너뜨릴 수 있는 담이다. 곧 당신의 아들의 피를 통해서 이 담을 무너뜨리신다. 그래서 우리와 하나님이 만나게 된다.
이 ‘언약’이라는 말 자체가 히브리어로 ‘브리트’라는 단어인데 이 ‘브리트’라는 뜻은 ‘한 덩어리’라는 뜻이다. 결혼을 통해서 남편 되신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가 한 덩어리가 되었기 때문에 같이 사는 집이다. 그런데 그 같이 사는 집에서는 항상 남편 되신 우리 아버지가 우리 자식들의 죄를 해결하고 우리와 만나시는 것이다.
예레미야 3장 14절, “배역한 자식들아” 아버지로서 자식들을 부른다. 그 말씀에 “나는 네 남편 이라고” 말씀 하신다. 우리를 창조하신 아버지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자기를 다 주신 남편으로 우리 아버지가 존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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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레위기서 1장 9절
- 레위기서 1장 1절
- 창세기 50장
- 출애굽기 1장
- 출애굽기 40장
- 출애굽기 25장 8절
- 레위기 1장 1절
- 이사야 59장 1,2절
- 예레미야 3장 14절